▲여수시 고소동 대첩비각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가 비각 안에 보존돼 있다. 흔히 '좌수영대첩비각' 혹은 '대첩비각'이라 부른다.
오병종
기록에는 1620년에 통제이공수군대첩비가 건립됐고 8년 후 비각이 세워지면서 대첩비보다 먼저 세운 타루비도 옮겨와 나란히 비각 안에 두 개의 비석을 보존하게 됐다고 나타나 있다.
두 비석은 모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보물이다. 그런데 이 비석들이 1942년에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조선의 혼을 말살시키려는 프로젝트 속에는 이순신을 기리는 대첩비와 타루비가 말살 대상이었다.
일본인 경찰서장 마쓰키(松木)가 1942년 두 개의 비석을 서울로 빼돌렸다가 처치하지 못하고 해방이 되자, 이 비석을 당시 총독부 박물관이었던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속에 매장하고 철수했다. 후에 여수시민들은 이를 두고 '생매장'이라고 표현했다.
여수 시민들은 해방 후에 비석찾기 운동을 펼쳤다. 수소문해서 비석을 찾아내 1946년 여수로 이송했다. 시민들의 모금과 유지들의 기부로 1948년 5월 24일 현 위치에 비각을 세우고 복구했다. 이렇게 해서 묻혀 사라져버렸을 타루비(눈물비)는 여수시민들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두 비석은 1960년 동시에 보물 제571호로 지정된다.
여수시민들은 이순신 장군을 기린다는 공통점 외에는 건립시기와 비석의 형태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비석을 보물 제571호로 묶어서 지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건의를 꾸준히 해왔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1998년에 타루비는 대첩비와 분리되어 보물 제1288호로 세 번째 다시 태어났다.
타루비는 보물로 지정이 되면서 탁본이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