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에서 펴낸 잡지 <새농민>에 실린 농약 광고. 한국 사회는 여성을 이렇게 다루었다. 1978년 10월.
최종규
가만히 보면 지구별 뭇가시내는 '하루도 안 쉬고'가 아닌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한 사람인 여성이 있었기에 우리 삶터를 가꾸거나 지킬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역사를 '가부장 남성 역사' 아닌 '늘 일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은 여성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부터 새롭게 역사를 살필 수 있다면, 평등뿐 아니라 평화하고 민주도 멀리 있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평등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은 부질없어요.
이제 사내들이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를 바라요. 바늘하고 실을 손에 쥐어 봐요. 손수 옷을 짓거나 손질해 봐요. 빨래비누를 쥐어 걸레를 빨아서 집안을 훔쳐 봐요. 도마질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담그면서 춤을 춰 봐요. 아이들을 학원에 그만 내몰고, 집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고 놀고 생각하고 꿈꾸고 책도 읽고 영화도 나란히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앞으로는 함께 일하고 함께 쉴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는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참다운 평등, 슬기로운 민주, 사랑스러운 평화를 우리 보금자리부터 가꾸어 온누리에 고루 퍼지도록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여성들이 커피를 타거나 책상 닦는 일 따위를 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아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직장도 많습니다. 이런 흐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있었지요. (188쪽)
여성사는 '여성만 높이는 역사'가 아닙니다. 여성사는 여성하고 남성이 같이 읽으면서 새롭게 배울 옛 발자취입니다. 어제를 살아온 여성사를 다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읽기에, 앞으로 살아갈 길에 참하고 착하며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피어날 수 있지 싶습니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가 힘겨이 벌인 싸움은 여성 사무직 노동자한테만 이바지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무직 노동자한테, 또 모든 노동자한테 이바지합니다. 여성사란 '평등하지 못한 삶터가 평등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슬기롭게 삶을 짓는 길을 배우도록 북돋우지 싶습니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사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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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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