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전쟁의 흔적
허영진
아빠는 군대에 있을 때, 훈련량이 많은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다양한 장소에서 훈련을 했던 기억이 있어. 그중에서도 해병대, 미군들과 함께 김포에서 훈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북한 땅을 보았던 생각이 나는구나. 아빠 쪽을 향해 겨누어진 포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첫날은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깊이 자지 못했지.
하루, 이틀 지나면서는 점점 익숙해지면서 북한 쪽을 바라보았던 기억도 나는구나. 만약 그 시절에 어느 쪽이든 최고 집권자가 전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겠지. 그중에 한 사람이 아빠였다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도 없을 테고 말이야.
역사에는 가정이란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도 있지만,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너무 많은 것을 파괴하고, 너무 많은 아픔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남길 테니 더욱 그러하지.
오랜 시간 동안 대치해왔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지금의 좋은 분위기가 정말 실행으로 이어진다고도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지도 못했던 '종전'이란 단어는 분명 한 걸음 더 나간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자식이 손주와 함께 또 다른 전쟁을 겪을까 봐 하늘에서 걱정하고 계신다면, 그래도 한 걸음 더 안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되지 않을까?
작게는 우리 가족이 원치 않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크게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시리아 내전 같은 아비규환 속에 살지 않고 각자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대통령의 행보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구나.
대한민국의 탄생과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전쟁, 그리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자 살겠다고 대통령이 도망가면서 시작된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의 역사와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이 지속되고 있는 역사가 이제 조금씩 미래로 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의 날들을 지켜보려고 해.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귄터 샤보브스키라는 정치위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고 발표했단다. 그는 시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장"이라고 답했는데, 그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어 장벽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
말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고, 그 말에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겠지. 언젠가 2018년 4월에 대해서 너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때가 '큰 변화의 시발점'이었단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빠의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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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대비하자던 아버지, 문 대통령 한번 믿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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