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젠쉔케(Gosenschenke)19세기 라이프치히 고젠쉔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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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역사에서 19세기는 '라거 제국'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1842년, 황금빛의 부드럽고 시원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 체코의 작은 마을, 필젠(Pilsen)에서 태어난 후, 맥주 세계지도는 라거로 점령되어 갔다. 고제의 고향 고슬라도 이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자연발효로 인해 신맛이 두드러지는 고제는 더 이상 고향에서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에서 고제는 여전히 사랑받았다. 요한 고틀립 괴테케(Johann Gottlieb Goedecke)는 이런 라이프치히의 고제 사랑을 통해 거대한 성공을 꿈꾼 사람이었다. 1824년 괴테케는 고슬라에서 고제를 양조하던 필립 레데만(Phillpp Ledermann)을 영입하여 될니츠(Döllnitz)에 양조장을 설립한다. 현재 라이프치히 오리지널 고제로 불리는 리터구츠 고제(Ritterguts Gose)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괴테케의 결정은 막대한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고슬라 전통 레시피로 양조된 고제를 낮은 가격에 판매하지 않았다. 프리미엄 맥주로서 모든 펍에서 흔히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선을 그었다. 곧 리터구츠 고제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시장을 점령했다. 80개가 넘는 고젠쉔케에서 한때 백만 병 이상의 리터구츠 고제가 판매되기도 했다.
전 세계가 라거(Lager)로 점령되어 갈 때도, 여전히 라이프치히는 'City of Gose(고제의 도시)'였다.
독일제국의 몰락과 함께한 고제한방의 총성으로 시작된 전쟁, 20세기 초 전 세계를 뒤흔든 전쟁으로 수많은 맥주양조장이 사라졌다. 1930년까지 유일한 고제 양조장이었던 리터구츠도 전쟁이 휩쓸고 간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1945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문을 닫았고 고제라는 맥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49년, 전쟁의 포화가 아직 남아있던 라이프치히. 수첩에 쓰인 고제 레시피를 가슴에 품고 한 남자가 작은 창고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전쟁 전 리터구츠의 직원이었던 프레드릭 부즐러(Friedrich Wurzler)는 고제 부활의 꿈을 꾸며 프레드릭 부즐러(Friedrich Wurzler) 브루어리를 설립한다.
하지만 고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맥주였다. 겨우 18개의 펍에서 판매될 뿐이었다. 양아들인 귀도 프니스터(Guido Pfnister)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1966년 그의 갑작스런 심장마비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1966년 3월 31일, 호텔 프로리히(Hotel Frohlich)에서 서빙되었다는 기록이 리터구츠 고제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기운이 옅어지던 1985년. 동독 출신의 교수인 로타 고드한(Lothar Goldhahn)은 라이프치히에서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고 폐허가 된 고젠쉔케를 발견한다. 그 고젠쉔케의 이름은 '오네 베덴켄'(Ohne Bedenken), 즉 '주저하지 않고'였다.
고젠쉔케의 발견과 함께 고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후, 그는 고제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결심한다. '주저하지 않고' 그는 곧 고제 만들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지 30년이 지난 맥주를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과거 고제의 맛을 기억하고 있는 라이프치히 사람들을 인터뷰를 했고 양조방법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마지막 고제 브루어리였던 부즐러(Wurzler)에서 근무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고, 손으로 쓰여진 고제 레시피의 일부를 얻게 된 것이다. 고제 부활에 대한 '의심'은 이제 '의심할 바 없는'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