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겪는 '차 빼기' 전쟁(사진은 KBS 드라마스페셜 <부정주차>)
KBS <부정주차> 갈무리
바쁜 아침 출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진땀을 빼야했다. 차문을 열기는커녕 차와 차 사이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옆 차가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럴 경우엔 조수석 쪽으로 타서 운전석으로 건너가곤 하는데, 오늘은 양쪽이 모두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주차를 해놓으면 어떡해. 운전 매너 하고는..."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이다. 아마 그 자리에 그가 있었다면 더 심한 욕설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몸을 이리저리 구겨가며 어떻게든 타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차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이른 아침이었지만, 서둘러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자동차 수에 비해 주차장이 부족한데다 대당 주차구역조차 비좁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런 이웃 간의 갈등이 빈번한 것 같습니다. 당장 관리사무소에 건의하고, 청와대에 관련 청원이라도 넣어야할까 봐요."잠이 덜 깬 채 잠옷 차림으로 내려온 차주는 자신도 여러 차례 겪었던 일이라며 애꿎은 주차장을 탓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말마따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차장의 모든 차들이 하나같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주차된 경차 덕에 공간이 조금 확보되어있을 뿐이었다.
하긴 지난해 어느 땐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주차 라인을 새로 그리는 문제로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다. 너무 비좁아 주차가 힘들다는 불만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주차공간을 더 만들 여력이 없어, 결국 주차구역을 벗어난 불법 주차를 단속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이태 전에는 두 대 이상의 차를 보유한 가정에 물리는 주차장 이용 부담금을 올리는 방안이 모색되기도 했지만, 다수 주민들의 반발에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듣자니까, 우리 아파트 단지만 해도 차가 두 대 이상인 세대가 한 대만 소유한 가구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주차 문제는 이제 입주자대표의 선거 공약에 더 이상 오르지 않을 만큼 난제 중의 난제가 돼버렸다.
겹 주차를 한 경우엔 주차 브레이크를 잠그지 말고 아침 일찍 다른 곳으로 차를 옮기라거나, 주차라인 한 가운데에 정확히 주차시키라는 안내 방송이 사실상 유일한 대책으로 남았다. 십여 년 전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땐 적어도 지하주차장만큼은 듬성듬성 비어 있었는데, 지금은 겹 주차 안 된 곳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차가 많아졌다.
차 양보했다가 봉변 당한 사연그렇잖아도 늦었는데, 학교 입구는 출근하는 교사와 자녀를 등교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차가 마구 엉켜 북새통이다. 교문이 막다른 길의 끝이라,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교통체증이 서울 도심 저리가라 할 정도다. 매일 아침마다 병목현상을 겪다보니 자잘한 접촉사고도 끊이지 않는데, 그래선지 요즘엔 근처에 견인차가 먹잇감 기다리는 하이에나처럼 상주하고 있다.
'대체 이 도로는 언제 확장공사를 하려나...'꽉 막힌 차 안에서 모든 운전자들이 내뱉는 한결같은 하소연일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 지역 구청장과 구의원 출마자들이 도로 확장 공약을 내놓지만, 늘 그렇듯 선거가 끝나면 검토 단계에서 끝나고 만다.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실상 도로를 넓히기 힘든 곳인데도, 유권자인 학부모들의 건의를 묵살하기 어려워 매번 듣는 시늉만 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학교가 시내버스의 종점이라 인도조차 변변치 않은 비좁은 왕복 2차선 도로는 밀려드는 차들로 몸살을 앓는다. 우리 학교가 해마다 수능 시험장 지정에서 제외되는 것도 이러한 교통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제도, 오늘도 도로를 넓혀달라는 운전자들의 아우성은 낡은 레코드판 마냥 반복되고 있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해 서울에 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도시 외곽 고속도로의 한 나들목에서 끼어드는 차 몇 대를 양보해주었다가 바로 뒤 따라오던 차의 운전자로부터 요란한 경적과 함께 험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왜 얌체 운전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느냐는 것이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고속도로 하행선으로 진입하는 램프에서 비상등을 켜며 진입하는 차 두어 대를 양보했다가 어김없이 뒤차로부터 흡사 꾸지람 같은 경적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는 추월하듯 옆 차선에 와 붙더니 창문을 내려 한바탕 삿대질을 해댔다.
서울 사는 친구 하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앞차에 바짝 붙어가는 운전 실력이 서울에서는 필수라고 말했다. 양보하는 게 무조건 미덕은 아니라면서, 십중팔구 자기만 손해라며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도로 위에선 '양보하는 놈만 바보'라는 거다.
아무리 얌체 같은 이들이 많다 해도, 그들 중에는 정말 위급한 환자와 같은 이들도 없진 않을 텐데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투다. 도로 위에서 단 몇 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그 강퍅한 심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 친구는 램프의 진출입 구간을 넓히지 않고서는 운전자들 사이의 갈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모든 게 자동차에서 비롯된 문제인데도, 주차장의 이웃도, 자녀를 등교시키는 학부모도, 서울 사는 친구도, 누구 하나 차를 탓하진 않았다. 하나같이 주차장을 더 짓고, 주차구역을 넓히고, 새 도로를 내고, 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차가 늘어나는 건 '고정 상수'로 보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차 대수를 줄이거나 하다못해 경차를 타면 주차 문제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 출퇴근과 등하굣길에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병목 현상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얌체처럼 끼어드는 행위도 꽉 막힌 도로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니, 자동차 대수와 도로 수 늘리기 경쟁을 할 게 아니라면, 차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길 넓히는 게 능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