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신부(오스카 코코슈카,1914, kunstmuseum Basel)
kunstmeseum Basel
이 그림은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라는 작품이다. 소용돌이치는 바람 속에 두 남녀가 껴안고 있다. 조개껍질 같은 요람은 폭풍우에 요동치고 남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보랏빛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이 와중에 잠든 여인의 얼굴만이 평화롭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코코슈카 자신과 그의 치명적인 사랑 '알마 말러'다.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함으로써 미래까지 예언한다고 해서 붙여진 그의 별명 '화필의 점사'답게 이 그림 또한 둘의 미래를 예언한 것 같다. 이별불안에 영혼을 잠식 당한 남자와 설사 이별이 코앞에 있다 하더라도 카르페디엠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렇게 살았던 여자. 그래서 그는 불안하고 그녀는 평화롭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해 본 사람이면 이 남자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마음을 접을 수 없기에 행복한 불행의 터널을 지날 수밖에 없는 남자. 그는 그래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에도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
밤새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두 손 꽉 잡고 있어도 이별은 온다. 화가인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불안과 소유에 대한 감정을 날것으로 그려내며 이렇게 썼다.
"지상에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비바람 치는 밤하늘을 떠돌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
알마 말러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존재로 나의 워너비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의 모델로 알려진 그녀는 쳄린스키로부터 작곡을 공부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한 그녀는 그가 사망하자 코코슈카를 만났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창시자 그로피우스와 재혼, 이혼 후 작가인 베르펠과 다시 재혼. 다 나열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모두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 음악, 문학을 창작했다.
그녀에게 바쳐진 수많은 작품들 중에 내가 가장 샘나고 부러운 작품은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이다. 말러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보내는 일종의 '사랑의 연서'인 이곡은 단순히 귀로 전달되는 곡이 아니다.
듣고 있자면 온 몸 구석구석을 열고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든다. 가랑비에 젖듯 섬세한 음률이 몸을 휘감고 마침내 그의 마음이 내게도 와 닿는다. 내게 배달된 편지가 아님에도 되돌려 주고 싶지 않은 음악편지.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코코슈카가 보낸 사랑의 편지에는 이처럼 쓰여 있다.
"거의 다 완성되어 가오. 번개, 달, 산, 솟구치는 물, 바다를 비춰주는 벵골의 그 불빛, 그 폭풍에 날리는 휘장 끝자리에 서로 손을 잡고 누워 있는 우리의 표정은 힘차고 차분하오. 분위기가 적절히 표현된 얼굴 모습이 내 머리에 구체적으로 떠오르며, 우리의 굳센 맹세의 의미를 다시 절감했소! 자연의 혼돈 속에서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 그리고 그 신뢰감을 신념으로 수용해서 서로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감이 잡혔으니, 이제는 몇 군데에 생명감을 불어넣는 시적인 작업만 남았을 뿐이오." - 알마에게 보낸 편지 중강한 부정은 오히려 긍정이 되듯 지나치게 확신에 찬 문구 또한 그 불안을 대변해 보인다. 7살 연상의 그녀는 손에 들고 있어도 쥘 수 없는 존재. '굳은 맹세의 의미'를 그녀에게 각인 시키고 싶었으리라. 그 불안이 화면에 가득하다.
예감대로 그녀는 떠났고 그는 실연의 아픔에 전쟁에 지원한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변한다고 하는데 머리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돌아온 그는 여전히 마음의 심각한 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나 보다. 도저히 떨쳐지지 않는 그녀를 잊는 대신 실물 크기의 인형을 제작한다. 누가 봐도 알마를 닮은 인형에 '훌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속옷과 명품드레스를 입혔다. 훌다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잠을 자고 오페라를 보며 그 인형을 모델로 그림도 그렸다.(인형과 함께 있는 남자, 자화상)
'집착남'이라는 말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