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은 보통 클럽에 근무하는 ‘상주DJ’밑에서 배우면서 일하는데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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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이면서 이 일을 하려면 거쳐야 하는 것이 견습DJ다. 견습은 보통 클럽에 근무하는 '상주DJ'밑에서 배우면서 일하는데 '사람'이 아니다.
"근무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일도 시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견습DJ들의 근무시간은 대체로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6시까지입니다. 적게는 7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일을 합니다."견습DJ들은 출근하면 'DJ박스'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선배 '상주DJ'가 출근하면 긴장모드로 들어간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면 지체없이 영에 따라야 한다. 담배 술 심부름은 물론 거의 개인비서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송씨는 "심지어는 선배DJ들이 '스테이지 가서 여자 좀 꼬셔 와봐라'는 것은 물론 '일 마치고 여자 꼬시러 가자'는 이야기도 했다"면서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수치심을 느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일단 영업이 시작되면 견습DJ들은 선배 DJ의 업무보조를 하는데, 주로 조명을 '찍는다'. 조명을 비추는 것을 이 직종에서는 '찍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DJ교육을 받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직접 음악을 플레이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운이 좋아 좋은 선배를 만날 경우이고, 어떤 견습은 아예 교육은 받지도 못하고 허드렛일과 잡일만 하다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육 못 받고 잡일만, 무보수에 '열정페이'로 견뎌'견습DJ'들은 이렇게 하루 7시간~10시간 씩 밤새워 온갖 일을 다 하고도 무보수나 무급에 가까운 처우를 받고 있다. 물론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없다. 송 씨는 "이 직종에서는 근로계약서는 99% 없다고 봐야 한다"며 "일을 가르쳐 주는 거니까 식대나 교통비는 지원해 주지만 페이는 없다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한 달에 10만 원 전후 정도 주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견습DJ 생활을 1년쯤 했던 김아무개(22)씨는 "아예 한 푼도 안 주는 경우가 많고 일부 업소에서는 교통비만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견습을 벗어나면서 돈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일주일에 사흘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월 30만 원을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시급으로 하면 3천 원쯤 되는데, 2018년도 최저임금 시급 7천530원의 절반도 안 된다.
견습기간도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상주DJ 마음대로다. 보통 견습 기간은 6개월인데 길면 1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송씨는 "실력이 없거나 배움이 느려서 견습을 오래할 수 도 있지만, 페이 안 주고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온갖 궂은 일 마다 않고 무보수도 감내하면서 견습을 하지만, 그렇게 죽자사자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란 데 문제가 있다. 다른 직종에서나 직업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이른 바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어려운 견습을 거쳐도 길이 열리지 않는다.
송씨는 "이 직종에서는 라인을 잘 타야지 장래가 보장된다"며 "그래서 한 번 들어온 견습들은 힘들고 불만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과 라인을 만들려고 참고 견디고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전했다. 송씨는 이런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여덟 살 때 꿈꾸었던 DJ에의 꿈을 접었다.
김아무개씨도 "강남권 대형 클럽 DJ가 되는 길은 '인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형들 따라다니면서 돈 못 받으면서도 인맥 쌓으려고 온갖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다른 부조리한 일들도 벌어진다. 송씨는 대학에서 미디(MIDI, 컴퓨터를 이용한 음악편집이나 특수효과)를 전공해 DJ와 작곡 레슨 등을 하면서 수입을 보충했는데, 레슨생들을 선배DJ들에게 뺏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곡 만들 때 사용하는 샘플을 반강제로 뺏긴 적도 있다"며 "지적재산인 음악이랑 작업 파일, 작곡 프로그램까지 교묘히 빼내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