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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마 상처를 봉합하기로 결정했다. 머리에 수술망을 쓰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커다란 원형 등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질끈 감았는데, 가슴이 떨려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수술 받는 동안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간호사가 내 다리에 줄을 휘감아 고정시켰다.
가슴까지 두터운 담요를 덮어주고, 이마만 보이도록 얼굴에 덮개를 올려주었다. 그 순간 너무 무서워서 벌떡 일어났다. 불안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의사와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마에 마취주사를 놓는 순간 내 다리를 다독여주는 간호사의 손길이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수술은 5분도 안 되어서 끝났다. 심지어 꿰매는 느낌도 그냥 이마를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었고, 마취주사마저도 엄청난 겁쟁이인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서른 넘은 어른이 오두방정 떨었는데 너무 간단하게 끝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몸만 건강하다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서울에서 고군분투중인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쉬는데 엄마에게 아무 일 없는지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전화 문자 모두 자주 하지 않는 모녀 사이인데 연락이 와서 놀랐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역시 심리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는 게 부모와 자식 사이인 걸까.
결국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 다쳤다고, 놀랐다고, 무서웠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싶고 어리광부리고 싶었지만 어른이니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걱정할까 봐 말할 수 없었다. 60이 넘은 노모의 어깨에, '나'라는 또 다른 짐을 얹어줄 수 없었다. 아프고 힘든 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했다.
이제 이마의 살은 잘 붙었지만 세로선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얼굴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생겼다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고, 고향에서 평범하게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곧 오기가 생겼다. 나는 남들처럼 살지 않고, 한번 뿐인 삶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약해지려 할 때마다 이 상처를 보며 정신을 붙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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