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전화 통화문재인 대통령이 1월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화국면의 물꼬를 튼 것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였다.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문 대통령은 올해 1월 4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평창 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는 다음날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수용, 올림픽에 참가하는 걸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로 감사를 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방한했을 때 극진히 환대하면서 "한반도 긴장 완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강력히 지지해 주신 덕분"이라고 또 감사를 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큰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내 덕분에 별 관심도 못 끌던 평창 동계올림픽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말한다"는 대목을 각종 대중연설과 기자회견에서 빼놓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
지난 28일 미시간주에서 있었던 중간선거 유세에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그(김정은)가 대단했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미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에 따르면 같은 날 문 대통령과 한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전화를 언제라도 최우선으로 받겠다"고 했다.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문 대통령에 무한 신뢰를 표시한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연루 의혹,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 추문 등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사안들을 맞닥뜨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좋은 소재가 됐다. 지지자들은 대중 집회에서 "노벨! 노벨! 노벨!"을 연호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일본 납치자 문제와 북일대화 의사 전달로 '성의'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일본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뀐 데에도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던 걸로 보인다.
회담 전까지 신중한 자세를 지켜왔던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에도 "과거에도 성명은 나왔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29일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뒤엔 "문 대통령의 성의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에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뒤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아베 총리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일 국교정상화를 원한다는 아베 총리의 뜻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적극 전달했고, '북한도 얼마든지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의향을 전해준 데 따른 걸로 보인다.
사실, 납치자 문제는 인도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과 북한이 일 대 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남북관계만 논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남북 정상이 다뤄도 되고 안 다뤄도 되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 문제를 북한에 거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었다. 일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만찬 후식에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장식이 사용되는 데 대해서도 항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성의를 갖고 일본 측의 입장을 김 위원장에게 적극 전달했고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공문서 조작·자위대 문서 은폐' '총리 친구 특혜' '모리모토 스캔들' '국회 해산발언' 등 연속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베 총리가 타개책으로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할 길을 열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