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안전감(밤에 혼자 걷기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을 종합한 안전지수에서 한국은 7.5점으로 미국 7.8점보다 낮았다.
OECD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를 떠나서도, 시민 10명 중 4명 정도가 밤에 혼자 걷기 두렵다고 느낀다면, 그 사회를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조차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계층의 차이가 있다. 평균 소득이 높은 지역은 대체로 치안 상태가 더 양호하기 때문이다.
빈부차가 안전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은 부당하며, 이 격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차별인 성적 차별에 대한 반응은 다른 듯하다. 성적 차이가 안전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은 부당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면 꽤 많은 이들이 거품을 물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안전한가? 여러 범죄 지표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불법 마약사건은 미국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살인 역시 미국의 절반 미만이고, 강간도 미국의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살인 통계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살인사건은 대부분 신고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간은 어떤가? 미국의 강간 신고율은 30~40%인 반면, 한국은 6~10%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간 신고율이 미국의 반의반도 못 되는 상황이라면, 한국의 성폭행 문제가 미국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강간'의 의미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살인은 사람의 목숨을 뺏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등하게 비교될 수 있다. 반면 '강간'은 두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강간의 정의는 '강제로 간음함'이다. 그리고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강간은 강제성이 있어야 하며, 폭행 또는 협박이 수반되어야 한다.
반면에 미국 연방정부는 2013년부터 성범죄 통계에 새로운 강간의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강간이 "여성의 의지에 반한 강제적 성행위"였으나, 이제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처럼 남성도 강간의 피해자로 인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간에서 '강제성'의 제거다.
여기서 두 번째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강간'에서 '강'을 제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5년 캘리포니아의 '명시적 동의법(Affirmative Agreeement)' 통과로 한층 더 구체화 된다.
협소한 정의, 낮은 신고율, 증가하는 성폭행이제 미국에서 강간은 '강제로 하는 성행위'가 아니라, '동의 없는 성행위'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의는 전 세계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독일 또한 2016년에 법 개정을 통해 강간에서 강제성을 제거했고, 스웨덴은 캘리포니아 수준의 명시적 동의법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라들과 한국은 '강간율' 자체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앞 나라들의 강간 통계에는 한국이 '강제성,' 즉 폭행이나 협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나 무죄 판결을 내린 강간 사건이 포함되어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폭행과 협박'을 강간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가중처벌의 요소로 간주한다.
강간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성적 편견과 2차가해 등으로 신고율이 낮은 한국은 통계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를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강간의 빠른 증가추세다. 만일 다른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포괄적 정의를 적용하면 이 증가 추세는 한층 더 가파른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