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만물상 정상 천선대
심혜진
만물상은 코스가 길어 시간이 꽤 걸렸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직으로 쩍쩍 갈라진 절벽들과 셀 수 없이 솟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내려와 한숨을 돌린 뒤 간단히 점심을 먹으려 했다. 이제 잠시 후면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휴게장소에 앉아 느긋하게 쉬며 여행을 되돌아봤다. 그 순간, 오전에 차안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창 신났던 기분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이산가족의 마음에 너무 깊이 동화가 된 것인지, 어쩌면 나도 이곳에 다시 올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원한 이별이라니, 눈물이 나왔다. 내가 훌쩍거리자 엄마는 "너무 힘들었나보다"라며 나를 달랬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 마지막으로 평양냉면 먹어요. 그거 먹어야 될 것 같아."버스 시간까진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엄마와 나는 옥류관을 향해 달렸다. 마음은 급했지만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고 국물 맛을 음미하며 한입한입 온 감각으로 냉면을 먹었다. 돌아가면 맛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내게도, 엄마에게도, 그날 먹은 냉면은 인생 최고의 냉면이었다.
결국 그날 평양냉면은 북에서 맛 본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다시 북에 갈 수 없었으니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평양냉면 타령을 할 때, 나는 내가 먹은 냉면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북과 관계가 단절된 후, 내가 눈물로 삼킨 그 냉면도 나와 완전히 끊어진 듯 여겼기 때문이다. 그날을 떠올리면 눈물처럼 밍밍했던 냉면이 떠올라 슬퍼졌다. 사람들이 가벼운 한 끼 식사로 그토록 '슬픈' 냉면을 원할 리 없지 않은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날의 냉면과, 금강산의 화려한 풍경과, 이산가족과, 단절된 슬픔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온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멀리서 어렵사리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라는 말을 듣고 잊었던 냉면이 떠올랐다. 그랬지, 내가 그 냉면을 먹었었지. 하루 종일 눈물을 찔끔거리느라 눈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아마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이들은 이산가족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었을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먼저 이뤄졌으면 한다. 상봉 후 그들이 맞이해야 할 마지막 아침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편지든, 통신이든, 그들이 지속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도 버킷리스트에 '옥류관에서 평양냉면 먹기'를 추가할까 한다. 아, 이건 너무 쉽겠구나.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과 어깨동무하고 사진찍기' 미션도 이룰 수 있기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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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삼킨 옥류관 평양냉면, 그 맛이 어땠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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