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이북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흰여울마을에서 70년을 사신 어르신. 악전고투했지만 마을을 정성스럽게 살피며 살아오신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유재홍
"여 하소"
이 말이 지금의 부산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표준어로 풀어쓴다면, "머물 자리가 필요하면 여기 쓰세요" 정도가 될까. 피란민의 땅, 한 때 한반도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던 도시. 부산 영도구의 좁은 방앗간에서 우릴 환하게 반겨주신 어르신도 흥남부두 철수 때 이북에서 배 타고 이곳으로 내려오셨다. 열 세 살 때 아버지와 큰누나를 남겨둔 채 어머니와 둘째 셋째 누나 함께 이곳에 내려오셨단다. 배는 거제도에 피란민들을 쏟아냈다. 부산에 미리 와계신 큰아버지가 어찌어찌 거제로 찾아와 부산으로 네 식구를 데려오셨고, 지금 사시는 흰여울마을에 터를 잡게 되셨다. 이 마을에 우연히 흘러든 건 아니었다.
부산시 공무원들은 몇 날 몇 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 동네로 가고, 이 때 들어온 이들은 저 동네로 가라고 지정해주었다. 어디고 땅이 부족해 무덤 위에도 집을 지었고, 줄만 그으면 내 땅이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끼리 더 넓은 땅 갖겠다고 싸우지 않았다. 내가 열 평 땅 먼저 줄을 그었어도 더 딱한 이웃이 있으면, "여 하소"하고 선뜻 다섯 평 나눠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 집들은 두 사람 누우면 가득차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