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만 원 때문에... 경비실 자리 지키는 '곰인형'

찬반 투표로 경비원 없앤 아파트, 초소를 지키는 건 인형뿐... '만 원의 행복'이 어려운 일일까

등록 2018.04.29 12:08수정 2018.04.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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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직업은 경비원? 경비실에 놓인 곰돌이 인형
곰돌이 직업은 경비원?경비실에 놓인 곰돌이 인형명현주

최근 아파트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경비원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는 최근 주민들의 찬반 투표를 통해 경비원을 없앴다. 며칠 전, 이웃 아파트인 이곳을 지나다 경비초소에 우두커니 놓여있는 곰돌이 인형을 본 적이 있다. 경비원이 없어진 이후 그 대신 놓아둔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해당 아파트 주민 B씨는 고등학교 딸을 키우는데, 아이가 밤늦게 집에 올 때마다 경비아저씨가 없으니 불안하다고 한다.

"저 경비실 불도 처음엔 꺼놨어요. 그런데 너무 어두우니까 요즘은 켜놓더라고요. 1층에서 비상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아저씨들이 치워주고 도움을 주셔서 안심이 되고 편했는데 지금은 안 계셔서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그러면 찬반 투표할 때 반대를 하셨냐"고 되물었다.

"그럼요. 그런데 그 찬반 투표가 문제인 게, 대부분 내용이 뭔지 잘 모르고 처음에 누가 찬성을 하면 주르륵 찬성하고 반대가 많으면 반대를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투표를 받으러 다닐 때 마치 찬성을 해야 하는 것처럼 얘기하면, 주민들은 그냥 찬성을 하기도 하고요."

"한 달에 만 원 덜 내자고 저렇게 했다는데 난 차라리 만 원을 더 내고 경비원 아저씨들이 자리를 지키는 게 편해요. 주민들도 불편함을 겪고 나서야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겠죠!"

단지 만 원 덜 내는 문제가 아닌데... '함께 사는 세상' 어려울까?


어둠속에 경비실 불빛만 환해 경비실에 놓인 곰돌이 인형
어둠속에 경비실 불빛만 환해경비실에 놓인 곰돌이 인형명현주

신도시 아파트는 보안경비 위주로 근무하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관리 위주의 경비 인력이 배치돼 있다. 관리 업무를 주로 맡는 경비원들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비상시에도 대처한다.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직업이다.

또 경비원 분들은 출신이 다양하다. 전직 교장, 대기업 근무자도 있다. 이전 직장의 경험을 살려 여러 역량을 발휘하시는 분들도 있다. 퇴직 후 집에서 노는 것보다 땀 흘려 일하는 게 좋아서 일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생계를 위해 근무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함부로 보아서도,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만 원이면 한 달에 커피 두 잔만 줄이면 되는 돈이다. '만 원의 행복'이라고, 함께 가는 사회도 만들고, 경비원들의 직업도 지켜주고, 주민들 일상의 편안함도 지켜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경비원을 줄이자는 안건을 내는 사람들이나, 그 안건에 대해 찬반 투표하는 주민들이나 조금 더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면 살기 좋은 아파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비원 삭감의 안건은 단지 내 관리비 만 원을 덜 내는 문제가 아니다. 꼭 필요할 수 있는 일자리를 줄이는 문제이고, 응급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을 없애는 문제다. 또 누군가 가장의 수입을 없애는 문제이고, 일상의 불편함을 대신해주던 분들을 외면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라지는직업경비원 #아파트경비원보장 #주민이기주의 #함께사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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