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현 비조사 앞 도로공사 현장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조총련계 할아버지. 그는 팔순이 되도록 부모님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죽기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최오균
일본 히라카타 시에 있는 왕인박사묘소를 참배한 후, 오사카로 돌아온 나는 내친김에 아스카촌(明日香村)도 가보고 싶어졌다.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한 이후, 아스카촌은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이 전수해준 불교와 제도, 문물 등을 수입하여 제반 체제를 혁신하고 아스카문화를 열었던 곳이다.
특히 6세기 말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 된 후, 8세기 초까지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아스카촌은 일본인들이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다.
나라 현 남쪽 다카이치군에 위치한 아스카촌은 오사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지방은 백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땅이다. 오사카의 옛 지명은 '나니와쓰(難波津)'로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당도한 항구'라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제일 먼저 닿은 항구도 오사카라고 한다.
다른 여행 일정을 포기하고 아스카촌을 답사하기 위해 교통편 등 답사일정을 짜고 있는데, 어제 왕인박사묘를 안내해준 호텔 나니와 박총석 사장이 이번 일정도 손수 운전을 하여 안내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고향이 전라남도 나주인 박 사장도 30여 년 전 맨주먹으로 오사카에 도착하여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를 한 백제인의 후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고국에 대한 애국심과 애향심은 남달리 큰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박 사장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편승하여 나라 현으로 출발했다. 오사카의 복잡한 빌딩숲을 지나 나라 현으로 들어서자 낮은 산과 질펀한 들판이 마치 우리나라 남도의 나주평야를 닮은 듯 은은하게 다가왔다. 4월 초인지라 싱그러운 새싹들이 산야에 초록 옷을 곱게 갈아입히며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나라(奈良, Nara)'의 지명은 한국어로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보다는 일본에서는 나라 지방의 평탄한 지형에서 '나라(奈良)'라는 도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나라'라는 지명도 그렇고 풍경도 마치 내 고향 남도의 모습과 닮아있어 어쩐지 포근한 정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