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풍경
차노휘
내가 카운터에서 식탁으로 가려고 하자 그는 나를 불렀다. 내게 다가오더니 선글라스를 한번 벗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지도 몰랐다. 너무나 익숙했다. 도수 들어가 있어서 내 눈에는 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가 활짝 웃으면서 엄지를 세웠다. 하지만 나도 변명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선글라스를 내밀면서 써보라고 했다. 도수 있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의 눈에 내 선글라스를 대보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선글라스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자 그가 미안했는지 질문을 했다. 마침 식당에 사람이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괜찮을 시간이었다.
"당신은 기적을 믿나요?"그의 질문은 다소 엉뚱했다. 하지만 길 위에서의 질문이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설이 밑바탕이 되었고 그것은 종교와 관련이 있다. 각자 출발지는 다르지만,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가 안장되었다고 믿어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이다. 이 길을 완주하고 나면 공식적으로 순례자로 인정이 되고, 순례자에게는 성인이 함께하며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눈빛으로 내가 뭐든지 말해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종교를 떠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기적을 믿죠. 특히나 이 길 위에서는. 그런데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에요. 어떤 종교도 없어요. 그럼에도 기적을 믿으니, 당신이 요구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그리고는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라는 평상시에 생각했던 것을 강조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길을 완주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적과 같은 거예요.""맞아요. 기적은 어느 시간대나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어요. 간절히 뭔가를 원할 때, 그 간절함이 하늘과 통한다고 나도 믿으니깐. 간절함만 가졌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행동으로 옮겨야 하죠. 그 행동이 이 길 위에서 걷는 거죠, 당신한테는. 걷는 것 자체가 간절함을 드러내는 행동이니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래전에는 공식 순례자가 되면 여태껏 쌓아온 죄를 사해준다고 하여, 순례자 증서를 사고팔기도 했어요. 정말 멍청한 짓이죠. 지금도 그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완주증. 그것은 종이조각에 불과한데. 그것을 얻기 위해 가짜 스탬프를 찍기도 하니…. 걸으면서 느끼는 소소함을 절대 느낄 수 없죠, 그런 사람들은."나는 그에게 리곤데(Ligonde) 알베르게에서 차를 타고 스탬프만 찍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내 허전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적의 길 위에 있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거죠?""아마도 걷는 기적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아닐까요? 그 기적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는…. 하지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느낄 수 없지만 그 기적이 시간이 지나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서 알 수 있을 거예요. 기적이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거예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 일을 실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용기를 이 길은 당신에게 줄 거니까요.""그렇다면 이 길을 완주하면 죄를 사하여 준다는, 다시 말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완주증. 그 완주증의 효력이 사실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제가 당신 말 뜻을 제대로 이해했나요?"내 질문에 그는 답변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와인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때 온통 머리가 하얗게 센, 그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여자가 음식을 들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