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覽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값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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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사춘기 무렵부터 청년기 때까지 나는 상당히 거친 일면이 있었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 눈에 거슬리면 주먹다짐도 피하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둔해 싸움은 못 했지만, 일단 누군가와 맞싸우면 이기든지 지든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한 번은 학교에서 유명한 악동과 싸우게 되었다. 그의 현란한 싸움 기술에 나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다. 코가 깨져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서도 나는 무섭도록 싸움에 집중했다. 서너 대 맞는 동안 한 대쯤 때리면서 악을 썼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해보자며 마치 오뚝이처럼 맞서 싸우자, 끝내는 싸우다가 지친 상대방이 도망을 쳤다. 그 후로는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시비 끝에 주먹으로 싸우다가 경찰서에 붙잡혀간 적도 두어 번 있다. 모두 다 내 어머니께서 이리저리 손을 쓰고 눈물로 호소하여 훈방으로 풀려났다. 그렇게 풀려난 후 단단히 꾸중을 들었다. '제발 철 좀 들어라!' 하면서 야단을 치시다가 서러움이 북받쳐 울면서 길게 훈계하실 때 나도 덩달아 울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주먹질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다.
'철없다'는 형용사는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나이가 어려 복잡다단한 세상일을 모르고, 생각이 깊지 못하기에 실수와 오류를 저지르기 쉬운데, 철부지 때의 행동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도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는 것을 보면 누구나 봄인 줄 안다. 그것을 모른다면 철을 모르는, 즉 철부지이다. 철부지의 어원은 '절부지(節不知)'에서 왔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을 구분할 줄 모르니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를 구분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농경사회 때는 곡식을 심고 거두는 때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농사의 최적기를 정해 놓고 때맞춰 일했다. 예를 들면 곡우 때는 못자리를 하였기에 무척 중요한 농기(農期)였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1년 농사를 망치거나 그만큼 손실을 보기 때문에 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저절로 지혜로워지고 철이 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늙는 것 빼고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을 통해 지식과 지혜가 어느 정도 쌓이고, 세상 물정을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철없고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 자신을 직시할 때가 적지 않다. 많이 누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욱하는 성질도 마음 밑바닥에 그대로 도사리고 있고,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경솔하게 처신하기도 한다. 편견과 선입견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마다 철을 아는 수준은 다르다. 그냥 봄·여름·가을·겨울 사철을 아는 수준부터 천문과 지리를 두루 꿰뚫는 높은 수준까지 천차만별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무직한 내공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금방 바닥이 보이는 가벼운 사람도 있다. 자기 수양이 잘되어 있는 사람은 언행에 깊이가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사람의 실수에는 비교적 너그럽다. 철이 없기 때문이라며 기회도 주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는다면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있으므로 희망적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실수하게 되면 나잇값도 못 한다고 비난이 따른다. 젊은이보다 만회할 시간도 많지 않으므로 그 실수로 말미암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영영 헤어나질 못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값을 못 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슬픈 일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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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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