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성소수자 부모모임 제공
상처를 줄 수도, 힘을 줄 수도 있는 '가족' 부모모임을 하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내 자녀의 문제'가 아닌 '성소수자 인권'의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 그중에서도 가족의 태도가 성소수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상담을 전공한 지인씨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성소수자 12명을 심층 인터뷰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인씨는 이 연구에서 가족이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 성소수자 당사자가 안정감을 느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분노·슬픔·소외감·우울함 등 부정적 심리적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가족의 부정적인 태도는 성소수자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변화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다(가족의 태도가 성소수자의 커밍아웃 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 질적연구, 2016). 그래서 이들은 가족이 성소수자에게 지지의 의사를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기도 하다.
"제가 제일 잘못 알았던 건,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이)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설득하면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혐오의 말도 하고. 그게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았더라면...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편견과 차별을 마주하고, 힘든 걸 겪어내고 있거든요.성소수자 당사자들은 '내가 이 이야길 했을 때 엄마라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부모니까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장 많이 상처를 주는 게 부모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크게 받고. 결국은 살아갈 힘을 잃게 되는 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편견을 가지더라도 부모가 괜찮다고 말하면 살아갈 힘을 받잖아요."(지인)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시선에 아파한다. 그래서 하늘씨는 혐오 세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아들의 사례를 힘주어 설명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와서 '내가 만나는 형이 집에 와도 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라고 했더니, 문밖에 서 있던 아들의 파트너가 들어오더군요. 그 순간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하다가, 최고의 찬사를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선택한 연인이니까요.""아들과 파트너가 대화하며 사는 걸 보면 정말 보기 좋아요. 만약 이게 '선택'의 문제라면, 어떻게 8년째 한결같을 수 있을까요? 혐오하시는 분들은 정말 여기를 와봤으면 좋겠어요. 부모하고 자녀를 다 봤으면 좋겠어요. 보지도 않고 어떻게 함부로 말하는 걸까요?" (하늘)혐오와 차별에 아파하는 성소수자와 가족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학교와 같은 공교육의 장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란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상의 공간에 녹아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일이다. 지금도 매달 열리는 정기모임에 50여 명의 사람이 찾아오지만, 이들 외에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머물며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당사자나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게 부모모임의 바람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도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집단 중 하나다.
"어느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이 혐오 발언 많이 한다더군요. '더럽다'는 식의 심한 말도 하지만, '너희들 중엔 성소수자가 없겠지만...'이라거나 '너 성소수자 아니야?'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겁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 성적지향을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늘 공포를 느끼고, 놀림의 대상이 되고, 괴롭힘을 당하죠.유네스코에서 발행한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위한 유네스코 가이드북,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 책자가 있는데, 이건 한국에서 배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사들부터 많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다양성 교육 등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자랍니다. 일상에서나 어디에나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인)실제 서울시 성소수자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다섯 명 중 세 명(58.5%)이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강한 거부를 경험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8배 이상 더 많이 자살 시도를 하고, 6배 이상 우울증을 호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Family rejection as a predictor of negative health outcomes in white and Latino lesbian, gay, and bisexual young adults, 2009).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에서 그 수가 굉장히 큽니다. 그 사람들이 다 상처받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성소수자 아이들이 혐오와 차별에 노출돼서, 정작 학창시절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소진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부모들은 이런 고민을 나중에야 알고 가슴 아파하고 미안해하지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건 그저 미안한 일입니다."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