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릉 소나무숲의 부부소나무 서로 X자형으로 교차하여 올라가는 소나무 두 그루의 모습. 필자가 임의로 부부소나무라고 붙였다.
홍윤호
흥덕왕의 비극과 신라의 비극그녀는 이 사건 전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가 자기 남편과 남편 형제들이니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가능했을까. 흥덕왕은 오로지 아내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끝까지 어떤 여성도 가까이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부인에 대한 흥덕왕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장화부인은 오빠가 죽은 이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아갔을 것이다. 남편이 정변의 주역 중 한 명이 아니었다면 살해당한 왕의 여동생이라는 위치상 죽음을 피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거꾸로 보면 흥덕왕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기 아내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간 흥덕왕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좀 더 복잡한 상황을 안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속마음까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그는 죽을 때까지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켰고, 죽을 때도 합장해 달라고 유언했으니 분명히 생전에 장화부인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사랑은 일편단심 순애보라기보다 근친혼이 가져온, 안타까운 비극적 사랑에 가깝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그는 사망시에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지명했지만 의도적 누락일 수도 있다).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면 정치 투쟁에 희생당할 가능성이 크고, 이 때문에 또 누군가는 장화부인처럼 근친혼 결혼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
하지만 흥덕왕의 후계자 지명 여부와는 상관 없이 그의 사후 신라는 최악의 권력 쟁탈전을 겪게 된다.
원성왕계로 분류되는 친족들 사이에 궁궐 내외에서 난투극에 가까운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고, 지방 세력(대표적인 인물이 장보고)까지 끌어들여 서로가 죽고 죽이는 복수극이 이어졌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에 보기 드문 정글 같은 권력 투쟁이었다.
이로 인해 원성왕계의 진골 귀족들은 상당수가 비명에 가거나 자살했다. 헌덕왕과 흥덕왕이 뿌려놓은 씨앗, '나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욕망은 최소한의 자제력을 넘어 혈연의 둑을 터뜨렸고, 그 거센 물줄기는 수많은 귀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귀족들은 기진맥진했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며 아마 반성도 했을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도 없이 벌어진 이 노골적인 친족 간의 대결에서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장화부인 같은 상처를 안고 비극적인 삶을 산 여성이 얼마든지 더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그녀는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성공한 정변의 주역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