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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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구불구불한 벚꽃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이 진해였다. 우리가 생각한 곳은 마산이었는데, 그 버스는 진해를 경유해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진해의 중심 도로를 달리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이 보였다. 아들이 갑자기
"아빠, 여기 한번 내려 봐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뭐 때문인지 보고 가요."어차피 마산에 꼭 가야할 이유가 없었기에 아들과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내렸다. 그런데 그곳이 진해 군항제 행사하는 곳이었다. 애초에 진해 군항제에 올 생각을 하지 않고 무작정 출발했는데, 진해 군항제에 오게 된 것이다.
군항제 행사장 주변에는 차량이 통제되었고, 큰 도로 양 쪽에는 음식을 파는 천막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천막 앞 곳곳에는 돼지 바비큐를 하며, 사람들의 눈과 코를 유혹하고 있었다.
"돼지고기 맛있겠다. 먹을래?""배 안 고파요." 진해 군항제는 벚꽃과 음식과 사람들로 지천이었다. 아들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어 행사장을 돌며
"저것 먹을래?"란 소리만 열 번은 한 것 같고, 아들은 "배 안 고파요"라는 답을 열 번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둘이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면서
"아무런 계획도 안 세우고 왔는데, 정말 여기에 잘 온 것 같지? 우리가 운이 좋은 모양이다.""맞아요."그렇게 돌아다니는 중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은 제왕산까지 모노레일로 올라가는 줄이었다.
"저것 한번 타볼까?"예, 좋아요. 아빠."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위에는 박물관이 하나 있었는데, 8층에 진해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진해 시내는 도로마다 벚꽃이 피어 있었고 멀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박물관 안에는 군항도시 진해시의 역사가 사진과 유물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여좌천이었다. 굴다리를 지나 올라가니 작은 천이 있었고 천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양쪽으로 벚꽃이 화려하게 가득 피어있었다. 진해는 온통 벚꽃 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도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멋진 꽃길을 따라 걸으며, 아들에게 또 물었다.
"저것 사줄까?""배 안 고파요."아들은 내 마음도 모르는 채 사주려고 하는 것마다 안 먹는다는 말만 했다. 그러고는
"아빠, 우리 돈 아껴서 나중에 맛있는 것 먹어요. 그것이 맛있는 것에 대한 예의예요.""넌 음식에까지 예의를 차리냐?"라고 말하고선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내년엔 저도 여자 친구 만들어 여기에 오고 싶어요.""제발 그래라.""저기 꽃으로 만든 화관이 보이네요. 엄마 사주면 좋아할 텐데.""야, 저걸 어떻게 울산까지 들고 가냐?"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세계를 다니며 배낭여행을 하는 중이라며 사진을 파는 외국인을 보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2천원을 주고 사진을 한 장 사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언젠가 나도 저런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있었다. 그때 마침 거리에 플래카드가 붙은 것이 보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스시였다. 아들이 그것을 보더니
"아빠, 스시 먹으러 가요.""그래 가자." 폐쇄된 진해역 앞은 복개천이 있었는데, 스시 식당은 그곳에 있었다. 생각 외로 가격이 저렴했다. 아들 식성을 아는 터라, 3인분을 시켰는데, 아들은 음식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인지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 갔는데, 울산으로 바로 가는 차는 6시가 막차였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부산 서부 터미널까지 가는 차를 탔다. 타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나는 잠에 빠졌다. 서부터미널에서는 바로 울산에 오는 버스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노포동까지 와서 울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11시가 넘어있었다.
일요일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부터 창원, 진해 여행까지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아들과 나는 좋은 추억을 공유했다는 것에 보람이 있었다. 다시 지난밤 꿈 생각이 났다.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꿈속의 아이들은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었으리라. 때를 놓치면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그것은 화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난 지금이라도 우리 아들들이 아이 때 못해준 것을 다해주고 싶다. 아들 둘은 다 커버렸지만, 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어린 아이가 들어있을 것이다.
어릴 때 만족하게 해주는 만큼은 못할지라도, 아들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 아이의 기다림을 해소하여주고 싶고, 그 어린 아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 아이가 해맑게 웃을 수 있게.
"지금 당신의 어린 아이는 당신이 무언가를 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덧붙이는 글
'무조건 여행'이라 이름 붙인 둘째와의 여행에 대해 아내는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이라며 시적인 표현을 해주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으랴. 둘째와 갑자기 여행을 떠났고, 생각 이상의 좋은 추억을 가슴 가득 담고 왔다. 아들에게나 나에게나 오랫동안 잊을 수 없으리라.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아들이 힘들 때마다 아빠와 함께 떠난 이 여행을 기억한다면 새로운 힘이 생기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시를 쓰며 살았는데, 아내도 어느덧 나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반은 시인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와, 정말 멋진 말입니다. 이 말 제가 좀 써도 되겠어요?"그래서 기존에 쓴 '무조건 여행'을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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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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