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외벽에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노란리본과 함께 “잊지않겠습니다”라고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2018.04.03
최윤석
4년 전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여러 번 방송되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대다수 승객들이 탈출할 시간을 놓치게 되었다. 전문가라고 생각했던 선원의 지시를 믿은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명령을 내린 자들, 그 믿음을 배반한 자들에게 잘못이 있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어른들만 믿고 기다린 착한 바보' 또는 두려움에 떨다가 희생된 '무기력한 피해자'의 이미지로 유통되곤 했다. 이후 생존학생들의 증언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실제 학생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애썼고, 친구들의 탈출을 도왔고, 팔이 마비되는 줄도 모른 채 승객 구조에 열심이기도 했다. 평소에 청소년을 바라보던 사회적 통념대로 탈출 직전의 모습들을 멋대로 상상한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날 이후에도 수없이 이어진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들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의 애도와 기억 방식을 결정하고 축소시키는 핵심적인 단어였다. 치유는 자기가 겪은 사건에 이름을 붙이고 사건의 원인을 알고 대처법을 알아야 가능한 과정이다. 단지 심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가족 형제자매, 생존학생, 그리고 다수의 청소년들은 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정보와 언어,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이니까 공부나 해', '이건 어른들의 일이다', '침몰한 나라 어른들이 건져내마'라면서 애도의 주체로부터 청소년을 밀어낸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청소년에게는 '슬픔'만이 허락되곤 했다. 추모는 허락하지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동은 안 된다는 것, 정치의 자리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바로 청소년의 위치였다.
유가족 형제자매와 생존학생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