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식
지난 2월 취재 때문에 미국 시애틀에 다녀왔어요. 시애틀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만추>의 배경인 곳이죠. 시애틀에서 10일가량 지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어요. 바로 유모차를 끌고 버스에 타는 모습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저상버스가 많이 도입됐지만,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육아빠'를 자부하는 저도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본 적이 없네요. 생각해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네요. 우리나라 버스에는 유모차를 둘 공간이 없잖아요. 시애틀 버스에는 좌석을 젖힐 수 있고, 그곳에 유모차를 둘 수 있어요.
우리나라 버스는 유모차를 끌고 타기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얼른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이 키우는 좋은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지난 3월의 일이에요. 5살 아이와 KTX를 타고 처가가 있는 포항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5살 아이를 키워본 분이라면, 아이가 얼마나 조잘조잘 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를 최대한 조용히 시켰는데, 주변 좌석에 앉은 분들한테는 좀 시끄러웠을 거예요. 그렇지만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았어요. 그분들께 참 죄송하기도 하고, 참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좌석 앞에 앉은 승객이 일어서서 제 가족을 보면서 욕을 하더라고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어요. 아이가 조금 시끄럽게 떠든 건 잘못이고, 그분께 참 미안한 일이죠. 근데 욕까지 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요?
욱한 마음에 일어서서 그 사람한테 갔어요. 험한 소리가 목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또 참았어요. 아이와 아내가 저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꾹 참고, "죄송하다"면서 사과했어요. 욕한 걸 따지려고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요. 그날 참 서글펐습니다.
언제쯤 우리 사회는 아이 키우는 좋은 곳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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