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글·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7) 표지《픽션들》은 1941년에 나온 소설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8편)과 1944년에 나온 소설집 《기교》(9편)에 실린 단편소설 열일곱 편을 한 권에 묶어 낸 단편소설집이다. 참고로 그는 장편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 송병선은 ‘Ficciones’를 ‘픽션들’로 옮겼는데, 이는 단수형 ‘픽션’으로 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이것은 “Soon-i, eat some tangerines!”를 “순이야, 귤들 먹어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이 소설집에는 스페인어 복수형 낱말을 겹토씨 ‘들’을 알뜰히 붙여 번역한 것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모두 다 단수로 옮기는 것이 읽기에도 편하고, 우리 말법에도 맞다.
민음사
네. 맞아요. 그 작품은 불면증에 대한 은유로 쓴 거랍니다.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나 자신에 대해 잊으려고, 내 방을 잊으려고, 방 바깥의 정원을 잊으려고, 가구를 잊으려고, 내 몸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완벽한 기억에 짓눌린 한 남자를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악몽을 썼어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161쪽
이 구절을 보면 보르헤스가 '불면증에 대한 은유'를 어떤 뜻으로 말했는지 조금 알 수 있다. 그는 이 짧은 소설에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의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뿐, 더는 알 수가 없다. 대체 그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시 한 달 전 인터뷰로 돌아가 봐야 한다. 거기에 그 실마리가 있다.
1980년 3월 보르헤스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어는 호르헤 오클랜더와 윌리스 반스톤이었다. 반스톤이 보르헤스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말을 붙인다. "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매력적이고, 그 일은 내가 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때 보르헤스가 맞장구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네, 맞아요. 나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눈이 멀기 전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것을 구경하고 읽는 일에서 피난처를 찾았지요. (……) 그땐 30분 정도 집 밖에 나갈 때도 책을 가져가지 않으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았어요. (……) 눈이 멀지 않았을 땐 늘 여러 가지 것으로 내 시간을 채워야 했지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나 자신을 놓아둔답니다. (……) 난 기억 속에 살아요. 그리고 시인은 모름지기 기억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난 상상력이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이 두 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은 기억도 해야 하고 잊기도 해야 해요. 모든 걸 기억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내 작품에 나오는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끝없이 기억하면 미쳐 버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가 모든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예요. 우린 우리 과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예요. 우린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해요. 안 그래요? 이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 하지요. 아주 거창한 이름이에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50-52쪽
보르헤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심리학 교수였기 때문에 집 형편이 아주 넉넉했다. 그런데 대대로 이 집안 남자들에게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고통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눈이 안 좋았다. 아버지는 보르헤스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눈처럼 눈동자가 파란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자라면서 눈동자가 밤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자식도 어쩔 수 없이 눈이 안 좋아질 팔자라는 것을 직감한다.
'반-기억'으로서의 상상력1914년 아버지의 시력이 안 좋아져 더 이상 변호사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자 식구들은 아버지 눈 치료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7년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오지만 시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보르헤스 집안은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1935년 보르헤스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여름이 오자 지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자살은 실패로 끝난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모티브는 이때의 불면증에서 왔을 것이다. 이태 뒤 1937년,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미겔 카네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나이였다. 그는 이 무렵 시력이 더 안 좋아진다. 1927년부터 여덟 번이나 눈 수술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때 남의 눈을 피해 도서관 지하 책 창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좋았는데 어두운 지하 창고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어 안 좋은 시력이 더 나빠졌다. 1946년 페론이 정권을 잡자 보르헤스는 반정부 선언문에 서명하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해고된다. 그로부터 6년 뒤 1955년 페론 정권이 무너지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국립도서관에는 책이 80만 권이나 되었지만 단 한 권도, 단 한 자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