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인근을 지나는 '애국보수집회'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국기가 그려진 깃발을 들며 행진하고 있다.
박명훈
경찰이 '평화통일집회' 참가자들을 보호(?)해 준 점은 퍽 인상에 남았다. "정신나간 것들" 등의 욕지거리를 말하며 근처에서 시비를 걸던 애국보수집회참가자가 경찰에게 저지당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촛불혁명으로 예전의 내가 알던 세상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가치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미국에게 우리민족의 흥과 저력을 과시한 풍물놀이와 '격문'은 매우 인상 깊었다. "(남북교류) 다 열린다 안카나!"와 함께 시작된 풍물은 꽹과리와 징과 장구와 북의 채를 집어든 손들이 조화롭게 '얼쑤' 하는 민요가락의 신명나는 조화가 눈부셨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흰 한복을 갖춰 입고 무대 앞에 나선 남성 1명, 여성 2명은 '주한미군 철수, 지금이 최적기다'를 주제로 격정적인 격문을 토해냈다. 주한미군을 "해방 후 이 땅에 들어와 70년 넘게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며,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염원으로 들끓는 민중을 무참히 죽이고 무단 침입한 점령군"이라고 강조한 격문이 끝났다.
이어진 흥겨운 율동을 담아낸 민중가요 <우린 하나요>의 선율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졌다. 노랫말 "둘도 없는 우린 하나요. 누가 뭐래도 우린 하나요"로 우리민족끼리 분단을 돌파해내자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도대체 '누가' 이 땅에 제멋대로 분단선을 그었단 말인가.
제주 4.3항쟁의 부르짖음 "누가 우리들을 죽였는가"이번 집회에서는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학살을 주도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음악공연도 비중있게 펼쳐졌다.
어느새 흥겨움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더니 "누가 우리들을 죽였는가?"란 비장한 노랫말이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리깔렸다. '제주4.3항쟁을 기억하며'란 부제를 단 노래악단 '씽'의 창작곡 <누가>가 서정적이며 음울한 피아노선율과 함께 귓가에 머물렀다. 사건으로, 혹은 반란으로, 항쟁으로, 학살로 규정되는 4.3 7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4.3의 본질은 학살을 당하는 순간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항쟁이다.
"섬에 있던 사람들은 보았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날 우리는 죽었는가 누가 우리를 죽였는가" 누가, 그 누가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를 뛰어넘는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그리도 무참히 쏘아 죽였던가.
지금까지 드러난 4.3의 핵심은 학살의 배후에 미국의 그늘이 짙게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떨쳐나선 민중의 항쟁이 연이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4.3은 학살에 굴하지 않던 민중의 항쟁으로 인식되어야 옳다.
아직 음원이 공개되지 않은 <누가>, 따라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는 마치 진상이 제대로 소명되지 못한 4.3항쟁 당시 자행된 끔찍한 학살의 한(恨)을 모두와 함께 풀어내는 씻김굿으로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