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디스크' 레드벨벳, 차분한 자태레드벨벳이 지난 1월 1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2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저렇게 춰보고 싶다' 2003년, 베이비복스의 평양 공연을 본 김가영씨는 춤을 배우고 싶었다. 가영씨의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마음 맞고 배우고 싶은 친구들 몇 명이 모였다. 영상을 보고 열심히 해봐도 한계가 있었다. 친구들과 '댄스 선생'을 모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춤을 배우고 한 달에 쌀 40kg을 수강료로 냈다.
가영씨는 2013년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 양강도에서 살았다. 매주 쌀과 춤을 맞바꾸며 지냈다. 가영씨는 "베이비복스가 평양에서 공연하고 간 후 베이비복스 춤과 머리, 화장이 유행이었다"라고 했다.
1일, 남측 예술단이 평양 무대에 선다. 2005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 이후 13년 만이다. 예술단 구성은 가수 조용필, 최진희부터 정인, 레드벨벳까지 다양하다. 예술단에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베이비복스의 평양 공연 영상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5년 전 공연이었다.
당시 베이비복스는 빨간색 상의에 꽃이 그려진 바지와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베이비복스가 노래하며 춤추는 동안 카메라는 평양 관객의 얼굴을 간간이 비쳤다. 찌푸린 표정으로 턱에 손을 괴거나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 장면은 '서울과 평양의 온도 차', 문화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됐다.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앞두고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예술단에 포함된 레드벨벳을 보며, 베이비복스를 떠올리는 건 그 때문이다.
평양 관객은 여전히 짧은 치마, 개성 있는 춤과 노래를 선보일 이 아이돌이 낯설까?
북한에도 걸그룹은 있다 "북한에도 걸그룹이 있다. 모란봉(북한의 경음악 밴드)이 아니라 음악대학원 졸업생들이 자기들끼리 팀을 이뤄서 공연 다닌다. 간부들의 생일, 환갑 같은 날. 이들은 노래, 춤, 악기를 다 하는데, 몇 년 전부터 노래 공연을 하면서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2011년 탈북한 최아무개씨는 "베이비복스가 공연하던 때와 지금은 비교불가"라고 못 박았다. 적어도 문화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북한 남자도 화장 하고 타투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한류, 이른바 '남조선풍'의 유행이다. 2011년에 탈북한 김아무개씨는 "한국 남자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북한 남자들이 화장하기 시작했다"라면서 "눈썹 타투, 화장, 귀걸이를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귀걸이를 허용한 것도 한몫했다"라고 덧붙였다.
북한 내 한류는 CD나 USB를 통해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한 드라마가 북한에 도착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1주일이면 남과 북의 가요 인기차트는 비슷하다는 것.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한국에서 인기있는 드라마, 노래는 일주일 안에 북한에서도 인기를 끈다. 중국의 저가 태블릿 PC에 담겨 다 넘어간다"라고 말했다.
"더는 북한에서 레드벨벳과 같은 아이돌 공연이 파격적이지는 않을 거다. 그보다 더 파격적인 공연이 많다. 북한도 한류를 받아들이는 전략을 바꿨다.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고만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차라리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을 만들라는 것이다."섹시 콘셉트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