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현재 관덕정 모습
강정효
제주 정치 1번지 관덕정 광장제주시 원도심에는 조선시대 제주지방을 관할했던 제주목관아가 있다. 관덕정은 제주목관아의 부속 건물로 병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 관덕정 앞마당에서 수많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반복돼왔다. 1901년 신축교난에는 제주도민과 천주교도들 간의 충돌로 제주목을 장악한 장두 이재수가 천주교인들을 처형한 장소였고, 제주4.3 당시에는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곳이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주를 찾은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 관덕정 광장에 수많은 제주도민을 운집시킨 채 연설을 진행했다. 지금도 제주 정치인들은 어떤 결의의 순간을 맞닥뜨리면 관덕정 광장에서 그 뜻을 천명하곤 한다. 제주 정치의 1번지인 관덕정 광장은 아직도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제주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하다
제주목관아 뒤로 돌아가면 제주북초등학교가 나온다. 1907년 설치된 제주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말해주듯 현대사의 굴곡을 같이 겪어낸 곳이기도 하다.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비석들이 이 학교가 걸어온 길을 알려주고 있다. 1947년 3.1 기념대회의 첫 희생자 역시 북초등학교 출신의 학생 허두용이었다. 아픔과 기쁨,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은 도심의 작은 학교로 남아있다.
'칠성통'의 유래를 아시나요?목관아의 동쪽으로 가면 기다란 상가골목이 나온다. 과거 원도심의 중심지였던 칠성골이다. 탐라국 시대 북두칠성 형태로 7곳에 제단을 쌓아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던 칠성단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현재는 '칠성통'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현대식의 건물들 뒤로 좁은 골목길들이 아스라이 남아있다. 근대화의 바람이 불며 이 거리를 휩쓸었을 단발머리의 여인들과 양복을 차려입은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로 피난 온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계용묵, 박목월, 장리석 등 예술가들의 사연도 녹아 있다.
엄마 품처럼 끝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칠성골 끝자락은 산지천과 맞닿는다. 한라산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마을들을 훑고 내려와 이 산지천에서 마지막 소임을 다한 뒤 바다로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이곳 산지천은 엄마 품처럼 끝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느낌이다. 과거 제주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물을 길어가 식수로 썼다.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유원지로 복원, 여름이면 '테우'(제주의 전통 떼배)를 띄워 과거를 추억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