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들에게 생명수 같았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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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t(heqet), tnmw(tenet), haAmt(kha-ahmet).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이렇게 불렀다. 이집트에서 맥주를 만드는 일은 예술로 생각되었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은 모두 여자였는데 이들은 모두 큰 존경을 받았다. 맥주 양조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이시스였으나 맥주 양조장을 돌봐주는 신은 테네니트(Tenenit)라는 여신이었다. 수많은 양조장이 이집트 전역에 있었으며 테네니트에 의해 좋은 맥주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이집트에서 맥주를 마시고 즐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음주는 권장되지 않았다. 상류관료인 서기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기간 많은 공부를 해야했다. 서기 지망생들이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취했을 경우, 강한 체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이집트인들이 술을 마시고 토해도 되는 시기가 있었다. 바로 축제였다.
이집트 최고의 신인 라(Ra)는 태양의 신이자 파라오의 숭배 대상이었다. 라는 매일 12시간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한다고 여겨졌으며 파라오는 그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라에게도 반기를 들었던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라는 그의 신전이던 헬리오폴리스에서 자신을 반역하려는 무리를 발견하게 된다. 라는 크게 분노하여 자신의 딸인 하토르(Hathor)에게 자신을 반역한 인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본래 하토르는 하늘과 별의 여신이자 인간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쳐 준 행복을 상징하는 신이다. 하지만 하토르는 두가지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와 파괴의 신인 세크메트(Sekhmet)가 그녀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세크메트가 된 하토르는 반역의 무리를 말살했다. 그러나 인간의 피를 맛본 그녀는 살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곧 세크메트에 의해 인간의 세상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힘으로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라는 작은 지혜를 낸다. 그는 인간에게 7000통의 붉은 맥주(Red beer)를 양조하게 한 후 들판이 모두 붓도록 했다. 붉은 색의 맥주가 인간의 피인 것으로 착각한 세크메트는 이를 모두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다. 평온히 잠든 세크메트는 다시 하토르로 돌아왔고 인간은 멸종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하토르를 찬양하는 축제는 여름에 열렸다. 여름은 나일강이 범람한 후 적갈색 땅을 선물하는 시기였다. 축제 때 사람들은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맥주를 마시고 밤새 즐겼다고 한다. 이때 취하는 것은 전혀 흉이 아니었다. 인류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것이 어찌 흉이 될 수 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피라미드는 사막의 먼지와 함께 그 화려했던 기억만을 남기며 쓸쓸히 사막 위에 남아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집트 왕조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집트는 그리스 로마와 비잔틴의 지배를 거쳐 서기 641년 이슬람의 국가가 된다. 노동의 괴로움을 잊게 해주었던, 사람 사이를 소통하게 해주었던,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던 맥주는 더 이상 이집트에서 찾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으로 얼룩져 있을 것 같았던 피라미드가 사실 이집트인들의 삶을 지켜주는 한 부분이었음을 맥주를 통해 깨달았다. 그들의 노동은 위대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즐거움이었음을,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맥주를 얻기 위함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퇴근 후 치킨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맥주 또한 우리에게 생명수와 다름아닌가? 맥주 한 잔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았던 5000년 전의 이집트인들처럼.
<참고문헌>야콥 블루메 저,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p.44손주영, 송경근 공저, <이집트역사 다이제스트100>, p.31https://www.history.com/topics/ancient-history/the-egyptian-pyramidshttps://www.ancient.eu/Beer/http://www.ancientegyptonline.co.uk/be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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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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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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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는 맥주 먹고 토해도 되는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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