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파이터>
청어람
무협소설은 나한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영향을 받아 친한 친구들도 무협광이 되었고 우리들끼리 모이면 수시로 무협소설 얘기로 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다. 밤늦게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 누가 더 강하고, 그 부분은 정말 웃기지 않냐는 등 작품 속 캐릭터를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다뤘다. 극장에서 무협영화가 개봉한다 싶으면 당시로써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몰려가 꼭 보고 왔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곳은 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협을 응용해 운동(?)까지 했다. 주말에는 막대기를 들고 마당에서 서로 초식을 외치며 무술 영화까지 찍었다. 막대기로 대결하다 싫증 나면 서로 맨손 격투를 치렀고 감정이 격해져 싸움 직전까지 가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의 주먹에 맞아 내 얼굴에 멍이 들었고 친구 역시 얼굴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장난들이었다. 성인이 되면서도 틈틈이 무술을 배우고 싶었으나 여건상 그리되지는 못했다. 잠깐 하다가 먹고사는 문제로 잊어버리고를 반복했다.
관심은 꾸준히 이어졌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로 유명한 최배달 선생님의 친형님께서 근처에 살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친구는 잠깐씩 도인 같은 생활도 했다. 무협소설 주인공처럼 산속에 들어가 얼음물에서 냉수마찰도 하고 나무를 상대로 목검치기도 하는가 하면 오랫동안 독특한 류파의 검술을 배우기도 했다. 오랜만에 친구가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십중팔구 산속에서 지내다 온 것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도 무협에 관한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전역 후 지역 도서관에 가자 한동안 보지 못했던 동창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각자 공무원 준비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며 공부를 하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도서관에 다녔다. 하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동창 녀석들은 공부를 할 때 난 조용한 곳에서 무협소설을 썼다.
각종 스토리를 구상해보고 동창들 이름을 변형해 소설 속 캐릭터들을 이름을 지었다. 무협소설 속 지명이나 중국의 역사 거기에 각종 문파에 관한 자료들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운이 좋았던지라 내 이름으로 된 무협소설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야 워낙 많은 지망생들이 몰려 원고료가 바닥을 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내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잠깐이지만 나도 유명한 무협소설 작가가 되어 나와 같이 꿈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성향도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작가가 되기에는 나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끊임없이 꿈꾸며 상상해야 하는데 나의 성향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느껴졌다. 작가 모임 같은 곳을 나가도 그들과 어울리며 밤새도록 얘기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차라리 스포츠 동호회가 더 재미있었으며 친구들과 앞날이나 돈 버는 얘기를 하는 쪽에 훨씬 흥미를 느꼈다.
"직접 해보든가" 내 인생을 바꾼 한 마디하지만 고맙게도 당시 무협소설을 출간한 일은 나에게 여러모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소설책의 표지와 전체적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얘기한 적이 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돌려서 말을 했으나 디자이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아는 척을 하냐'는 투였다.
더불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낮은 음성이 나의 귀에 확 들어왔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정 그렇다면 직접 해보든가." 직접 해보든가? 뭐 못할 것도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을 배워서 직접 소설책의 표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난 그쪽 관련 대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직업훈련소 같은 곳은 1년을 꼬박 다녀야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그런 쪽을 제대로 가르쳐줄 학원도 없었다. 그러던 중 건너 건너 아는 지인 중에 지역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분이 계셨고 다짜고짜 그분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생각 외로 편집디자인 일은 나와 잘 맞았다. 출판사에서 디자이너가 할 때는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으나 막상 배우기로 하고 편집기자분의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무엇인가 기능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소설 쓸 때처럼 벽돌을 한 장 한 장 올린다는 느낌으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15일 정도 지나니 기능은 잘 알지 못해도 전체적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를 하고 있으니 집에서 혼자 해보며 기능도 차근차근 스스로 배워 나가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 그때 배웠던 일들은 현재 나의 직업이 되었다. 글 쓰는 것도, 디자인도 둘 다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희소성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나의 삶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신문사나 출판사 같은 곳에 취직을 하더라도 글 쓰는 사람은 많으니 상황에 따라 일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지만, 편집을 겸하게 된다면 좀 더 자리가 보장될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조그만 가게를 얻어 각종 책자나 전단, 홍보물을 만드는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세상은 '나비효과'의 연속인 것 같다. 만약 그때 내가 무협소설에 빠지지 않았다면 현재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생업에 바빠 그때처럼 무협소설을 읽지는 못한다.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 같은 곳에서 무협 웹툰 등을 찾아서 읽는 나를 보면 지금도 무협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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