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언 조합원은 KEC가 첫 직장이다. 1987년 19살에 입사해 올해로 32년차 근속하고 있다.
KEC지회
지난 회사생활을 되돌아보면 사업확장, 자회사설립, 외주화, 구조고도화 등 다양한 이름의 경영전략들이 있었다. 경영전략이 다양할 수는 있다. 문제는 회사가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경영전략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제조산업에서 생산을 줄인다는 것은 생산인력이 줄어든다는 것이기에 노동자들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존과 직결되는 일을 회사가 노조와 교섭을 통해 상의할 때는 문제가 크지 않았다. 문제는 회사가 '노조와 상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서부터다.
1987년 당시 회사는 TV같은 가전제품을 생산했다. 전자기기 사업이 잘 됐다. 수출 콘테이너가 나가면 바로 돈이 들어오는 식이었다. 회사는 그 돈으로 반도체에 투자를 했다. KEC는 유독 투자와 회수, 정리가 빨랐다. LCD사업도 했고, 삐삐도 하고, 전자키보드 사업도 했고, 시대마다 각광받는 전자기기나 부품제조 분야에 잘 뛰어들었다. 투자를 조금 넣어서 효과를 보려고 하니,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정리를 했다. 공정만 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사업도 같이 정리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그때는 공정을 정리한다는 게 바로 생계불안정으로 오진 않았다. 제조업을 유지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른 공정으로 이동했다.
사업성과가 나는 분야는 분사를 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전자키보드와 TV이다. 나도 처음에는 PCB(TV나 PC에 들어가는 보드)공정을 하다 90년도에는 전자키보드와 디지털피아노 생산라인으로 옮겼다. 거기서 2009년도까지 기술업무를 했다. 담당은 키보드 쪽이었다. 그러다 잘 나가는 악기파트에 대해 회사는 분사를 결정했다. 그 이후 TV쪽으로 옮겨 품질업무, 구매업무(완성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사는 업무)를 했다. 다시 회사가 TV파트 분사를 결정하며, 나는 반도체로 넘어와 정비 업무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2010년 즈음 반도체가 호황으로 돌아선 반면 전자기기부문이 쇠퇴했다. 회사는 쇠퇴한 전자기기부문의 분사를 결정했다. 분사는 KEC로서는 사업을 접는 것을 의미한다. 과정은 간단했다. 회장님이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주력으로 간다"고 발표를 하면 그게 결정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회사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 분사가 결정되면 공정이 마무리되고, 공정별 라인마다 배치된 인력이 전부 이동을 하거나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전자키보드 공정의 경우 라인만 4개였다. 그럼 사람이 라인 1개당 30-40명 정도 배치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던 90년대 노동자가 최대 3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30년간 서서히 정리하고 반도체공정 하나 남은 지금, 노동자가 700여명이다.
사업을 접는 과정은 간단했던 것에 반해 접기까지 결정에 '노동자'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줄어드는 동안 잡음이 없었던 건 그나마 회사가 제조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공정이동처럼 퇴사가 아니어도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당시 회사는 형식적이나마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회사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구조고도화'는 다르다. 공장부지에 복합쇼핑몰을 세운다는 것은 더 이상 제조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KEC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 '다 나가라'는 선고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