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소설집 <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내가 느끼는 이 항구적인 두려움은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다. 풍족하거나 해탈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저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이 없다. 진부하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는 건 버거운 일이다. 고통은 필연이다. 문제는 이걸 거의 모두가 겪다보니 이런 괴로움에 특별한 개성을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냥 그게 사는 거라고 말한다. 혹은 위악과 위선이 첨가된다. 이야기를 실제보다 험악하게 만들거나 혹은 이런 삶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들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빈곤하지만 정감있는 가족에 대한 묘사를 떠올려 보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불안과 아픔을 다룬 글들은 무수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공감할 것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래서다. 이해는 한다. 사람들은 일탈적이지 않은 괴로움은 시시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황정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뚜렷한 사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록된 대부분의 소설들은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인생에 그다지 큰 풍파 없이 살아온 내 기준으로 봐도 한번쯤은 듣거나 봤을 법한 일들이 작품들 속에 등장한다.
갑자기 가족 중 누군가 위독한 병을 앓거나 혹은 알고보니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서 범죄가 일어났거나 뚜렷한 답도 없는 인생을 살면서 막연한 허무함을 느끼는 일들. 그런데도 <아무도 아닌>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는 인물들에게 하지 않았던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바짝 들여다 보고 관찰하기. 그들의 속을 엑스레이 필름처럼 투명하게 비추기.
신이 없는, 인간이 귀하지 않은 세상보는 시야가 달라지기에 익숙한 사람들과 사건들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나는 책을 읽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작가가 이 세계는 최소한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왜 최소한일까. 뚜렷한 비극이나 일탈을 겪지 않고 적당히 기댈 구석과 사람들도 있는 이들이 겪는 일을, 말하자면 사회의 평균이라 할 사람들이 마주하는 사건을 다루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상류엔 맹금류'에서 아버지의 폐암 소식을 알게 된 재희네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주인공은 그것이 일방적인 위탁이 아니라 격려와 다짐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복경'의 화자는 인간이 존귀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똥을 싸는데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병원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여기 저기나 있는 존재이고 귀하지 않다.
말하자면 황정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괴로운 것은 그 세계에 특별한 악마가 있거나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 먹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 곳에 신이 없고 인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다. 인상적이게도 <아무도 아닌>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품들 속에는 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밥을 먹는 것은 생을 연장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다. 뭔가 거창하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 아니다.
'상류엔 맹금류'의 인물들은 문자 그대로 똥물 옆에서 밥을 먹는다. '양의 미래'의 주인공은 습기 찬 지하에서 어두컴컴하고 끝도 없는 터널이 있을지 모를 막힌 벽을 보며 밥을 먹는다. 나를 죽일 만큼 혹독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안하고 끔찍하기 그지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아무도 아닌>이 보여준 글쓴이의 윤리글을 배우면서 이런저런 교훈을 얻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원칙으로 삼는 명제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이다. 왜곡하지 말 것, 부풀리지 말 것,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명백하게 쓸 것.
이것은 트라우마의 치료 과정과도 유사하다. 대부분의 심리적 외상은 언어의 부재 때문에 발생한다. 내가 겪은 끔찍한 일들을 직면하고 풀어낼 말이 없다. 그래서 그 경험은 증상으로 개인에게 돌아온다. 사람들이 흔히 글쓰기를 '힐링(치유)'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회복의 첫 단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사건이 있었고 그것의 의미가 명백하게 무엇인지 파악했을 때 그 다음으로도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글쓴이에게 정직함은 미덕이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다.
<아무도 아닌>에서 나를 강렬하게 휘어잡았던 문장은 책의 첫 시작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이다. 황정은은 말한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고. 이 책은 너무도 흔하기에 '아무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 그들을 그렇게 여긴다.
작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황정은은 가감 없이, 위선도 위악도 없이 정확하게 이들이 사는 삶의 풍경을 글로 옮긴다. 그런 점에서 내게 이 소설집은 잘 쓴 작품이기도 하지만 글쓴이로서 보여야 할 윤리를 제대로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아무도 아닌>은 온통 스산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인물에 접근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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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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