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 꽝남성 하미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위령비. 애초 한국군의 학살의 참혹함을 묘사하고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비문이 있었지만 참전군인 단체와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현재는 연꽃 문양 대리석으로 가려진 상태다.
한베평화재단
하지만 현재 위령비 뒷면에 이 비문은 없다. 연꽃 문양 대리석이 비문을 덮었다. 2000년 5월 준공을 앞두고 위령비 건축자금을 지원한 한국군 참전군인 단체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비문 내용을 바꾸라고 요구했고, 한국 정부도 베트남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베트남 정부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비문을 고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저항하던 주민들은 비문을 고치는 대신 연꽃 문양 대리석으로 가리는 쪽을 택했다. 비문을 수정해 진실을 왜곡하느니 차라리 비문을 가려 진실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언젠가는 다시 비문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18년이 지난 올해도 응답받지 못했다. 50주기 위령제마저, 어둠 속으로 들어간 비문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치러졌다.
하미마을 주민들이 액자 선물을 준비한 건 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건넨 액자에는 은폐를 강요당한 비문 내용이 담겨있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비문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지, '함께 하자'는 손 내밈이었다.
이번 50주기 위령제에 다녀온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전했다.
"그날 (주민들이) 제 손을 붙잡고도 간절하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 비문을 원상복구해 달라, 그것이 서로를 용서하고 보듬는 길의 시작'이라고.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또 인정하는 것이 우리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이라고요."
손을 내민 주민들, 갚아야할 '마음의 빚'문재인 대통령은 22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이다. 문 대통령은 23일 열린 한베 정상회담에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양국이) 모범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불행한 역사"에 대해 문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사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불행한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려면 최소한 가려진 비문만이라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하는 것 아닐까.
(취재·제작: 이승훈 조민웅 기자 / 사진 제공: 한베평화재단·베트남평화의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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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한 문 대통령, 연꽃 비석의 비밀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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