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페스티벌 뒤풀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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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페스티벌 뒤풀이 자리였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친구와 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맥주잔을 치켜들며, 각자 자신을 소개하자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누구입니다" "○○당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누구입니다" "청년문화기획자인 누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어달리기가 계속됐다. 함께 간 친구가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는 누구입니다"라는 소개를 마치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소개할 그 무엇도 찾지 못했다. 대안학교에서 하던 글쓰기 수업은 마무리되었고, 다니던 직장은 육아로 인해 그만둬야 했고, 그렇다고 내 이름으로 낸 책 한 권 없는 나를 글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뭐라고 나를 소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창피함의 정도와 망각의 속도는 비례하나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부럽다. 너도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대안교육에서 6년이라는 경력이 생긴 거잖아.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할지 모르겠더라. 나는 세상이 말하는 경력 단절 여성이야."싱글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날 위로했다.
"내가 언젠가 겪어야 하는 걸 언닌 이미 다 겪었잖아. 연애든, 결혼이든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게 더 막막할 때가 있어. 언니, 이번 주말에 바람 쐬러 갈까?" 친구의 제안이 솔깃했지만, 내 일정만 확인하면 떠날 수 있는 시절은 끝났다. 결혼과 동시에 시간의 자유는 사라졌다. 주말에 스케줄을 만들려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내가 살던 지구를 떠나 여유가 없는 낯선 별에 사는 것 같았다.
비혼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결혼제도 안에 들어오고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결정할 때마다 '가족의 안테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아실현은 시간의 자유 없이는 불가능했다. 물론 사람들은 절실하지 않거나,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하겠지만. 자아실현도 물론이지만 직장생활과 육아를 함께하는 건 아이를 업고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었다.
여성들의 지친 하루를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