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프란체스코
차노휘
프란체스코의 몸이 흔들거리더니 왼쪽으로 살짝 기우뚱했다. 그는 누가 볼까 싶어 잽싸게 등을 세웠다. 옆에 앉은 나는 모른 척 해주었지만 입가에 절로 피는 웃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강철 같은 그도 피곤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곳은 부르고스에 있는 병원 대기실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동안 세 군데 대도시를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이 두 번째이다.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이 세 도시에서 해결해야 한다.
나는 전날 발을 살폈을 때 심각한 왼쪽 발가락을 제쳐두고라도 총 다섯 군데에 물집이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통증 없는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과연 저 발가락이 내 발가락인가 싶었다. 근육통은 전혀 없었다. 단지 물집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왜 물집이 유독 많이 생기는가. 더군다나 왼쪽 새끼발가락은 밴드 붙이는 것조차 무서웠다. 어제 작은 상점에서 밴드보다 더 좋아 보이는, 피부처럼 말랑한 것을 6.5유로 주고 사서 붙였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감염이 걱정 되었다. 그런데도 진찰을 받아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급으로 말하면 중형 병원 정도이다. 나는 외국인이라 여권을 제시했다. 그러자 두 가지 종이를 접수처에서 내주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첫 번째는 의사 상담만 할 수 있었고(73.75유로), 두 번째는 상담과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요금이었다(92.18유로). 나는 두 번째 것을 선택했다. 그런 뒤 인적 사항을 적었다. 갑작스러운 병원행이라 영문 주소도 한참을 헤맨 다음에 적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병원에 직접 병원비를 내지 않는다. 나는 외국인이다. 의사 진료와 처치를 받은 다음 병원에서 십분 거리인 지정된 은행에 현금으로만 돈을 입금한 다음 그 영수증을 병원에 다시 가져다 줘야 한다. 이런 내용을 프란체스코가 영어로 성심성의껏 통역해주어서 알았다.
아, 비싼 병원비와 복잡한 절차, 지루한 대기 시간. 절차를 받는 동안 몇 번이나 서류를 찢고 나가고 싶었다. 일찍 알베르게에서 발을 쉬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위해 옆에서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고 있는 프란체스코의 성의를 생각해서 참았다. 대기 순번까지 놓쳐서 대기실 모든 고객 순번이 끝난 다음에야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처치 또한 별 것 없을 거라고 미리 나는 예단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나, 꼭 진찰을 받아야할까?" 그는 잠이 확, 깨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조금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이니? 너는 꼭 의사에게 발 상태를 보여야 해. 염증이라도 생겨봐. 일이 더 커질 수가 있어. 그리고 항생제도 다 떨어졌다고 했잖아?"
"그러긴 해. 하지만 너무 복잡해. 약국에서 항생제만 사면 되지 않을까?""노휘, 네 발가락은 꼭 치료를 받아야 해. 약국 같은 곳에서는 치료를 해주지 않아."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맞은편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가 호기심 가득 한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부러웠다. 그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 현지인이었다. 우리네 병원에 오는 어르신들처럼 느긋했다. 나도 동네 병원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의사와 직원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프란체스코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고작 나는 어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봤고 오늘 오전에 함께 걸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