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 마을 말바위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꽤 높은 산이 하나 있는데, 산봉우리 모양이 말을 닮아 ‘말바위’라 한다. 마을 이름 ‘고마’도 여기에서 왔다.
김찬곤
마을 이름 '고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백이숙제가 화순 운주사를 거쳐 오다가 마을 서쪽 산봉우리를 보니 말 모양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백이숙제는 "저 봐라, 산봉우리 바위가 신기하게도 꼭 너처럼 생겼구나!" 하면서 말 목을 다독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두드릴고(叩)'에 '말마(馬)' 자를 써서 고마 마을이 되었다.
마을 들머리에서 바라보면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감싸고 있다.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인다. 원래 마을에는 열 당석(당산)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느티나무를 당산으로 모시고 있다. 고마 마을에서 이향례(81) 할머니를 만났다.
이향례 할머니는 〈중과 과부〉, 〈소금장시와 과부〉, 〈좋나!〉, 〈할머니와 청년〉, 〈서모는 무섭다〉, 〈눈으로 점을 치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뒤 세 이야기는 '구비문학대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다 샛길로 빠지면서 이랬다.
"있어도 되부리고 놈 무시하고 깔뭉기는 사람은……, 못써. 그러면 못써. 그런게 미운 사람 떡 한나 더 주고 또 미운 놈 더수기 한 번 더 따둡가려 주고, 그래라고 다 옛날 어른들이……, 절에, 거시기 저, 하나님 믿으러 가면 목사님도 다 그런 말씀 해주시고 글드마."
옳으신 말씀이다. 나는 여기서 "미운 사람 떡 한나 더 주고 또 미운 놈 더수기 한 번 더 따둡가려 주고" 이 말씀이 확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또 이게 마음같이 잘 안 되는 게 세상일이다. 국어사전에서 '더수기'를 찾아보면 '뒷덜미의 옛말'이라 나와 있다. '뒷덜미'를 찾아보니 '목덜미 아래 양 어깻죽지 사이'다. 나는 어머니가 더수기가 아프다, 할 때면 '등허리'가 쑤시구나, 짐작하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등을 두드려 드렸다. 전라도에서 더수기는 보통 이렇게 등허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