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이야기.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원초주의 작가의 작품이다.
노시경
'카미유(Camille)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에 살던 무명의 작가가 15세기 말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부활하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언어, 종교, 국토에 기초한 이탈리아 민족이 역사의 자연스러운 단위라고 주장하는 원초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카미유의 이야기'는 세 개의 그림이 세트처럼 전시되어 있다. 위의 두 그림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아래의 병풍같이 긴 그림은 명예로운 전투도를 묘사하고 있다.
전투도에서는 기병들의 군대가 성 안으로 마구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림을 둘러싼 액자의 사방에는 이 신화를 계속 기억하고픈 가문들의 문장(紋章)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통일 전, 이탈리아 민족의 의식 속에 담겨있었던 민족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층으로 올라서니 19세기 프랑스 화가 루이스 불랑제(Louis Boulanger)가 그린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초상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팔짱을 끼고 선량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서 있다. 통통한 풍채를 지닌 그의 모습이 왠지 포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투르 미술관의 각 전시실에는 관리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 내가 발자크 초상화를 보고 있으려니 한 중년의 여성 관리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녀는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발자크가 투르에서 태어난 사실은 알고 있죠?""발자크의 고향이 이곳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사업을 벌였고 사업이 실패하자 그 빚을 갚기 위해 미친 듯이 글을 썼던 소설가지요. 그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 40잔의 커피를 마셨던 커피 중독자였어요.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거의 잠도 못 자고 집필한 거지요.""하루에 커피를 40잔을 마셨다고요?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발자크가 하루에 커피를 40잔이나 마신 것을 누가 세어보았다는 것인가? 대충 그런 날도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나는 그가 마신 커피 잔 수보다도 그가 작가로서 느꼈을 성공과 좌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의 커피 속에는 원고료 몇 푼 때문에 잡문을 써야 했던 인생의 비루함이 녹아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옛 대주교의 집답게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에는 큰 거실과 복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 보니 복도에는 다양한 조각상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18~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조각가인 장 앙투안 우동(Jean Antoine Houdon)의 청동작품이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