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미투운동으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6일 당 여성대회에 참석해 "민망한 사건들이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지고 있다"며 "미투운동으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총 5년 여를 일한 C씨는 "자유한국당에선 피해를 말해도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남소연
그는 "대책위원장인 박순자 영감이 그런 말을 하면 당 안에선, 이걸 '피해가 있어도 말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에 깔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내겐 고통스런 일이어도 (거기선)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된다. 특히 여성 보좌진에겐 꿈도 희망도 없는 곳,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얘기다. C씨의 말이다.
"의원실은 개별 소기업 300개와 같아서, 매우 폐쇄적인 데다가 방마다 여성은 1~2명에 불과하다. 고용의 법적 근거도 없는 탓에 '파리 목숨'처럼 영감 말 한 마디에 잘릴 수 있다. 그러니 여성보좌진이 안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건, 혹은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의원 300명(20대 국회 시작 기준) 중 한 의원실마다 4급부터 9급까지, 보좌관·비서관·비서(직급 순) 등 총 9명이 근무한다(인턴 포함). 최근 관련한 토론회에서 한 한국당 비서관은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다. 그런데 4년 내내 8~9명 공무원이 한 방에서 같이 일하는 경우가 있느냐"며 그 구조적 폐쇄성을 지적했다.
앞서 C씨가 언급한 '고립감'은 본인의 경험이기도 했다. "성희롱을 당해도 같은 방에 있는 남성 보좌진 누구도 제지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여성(보좌진)은 대개 급수가 낮거나 인턴 같은 비서직이라, 사건이 나도 주로 가해자인 남성보좌진은 의원실에 남고 여성보좌진이 쫓겨나곤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C씨는 "의원실에 있다 보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렇게 고립감을 느끼다보니 어느 때엔 여성들 목소리만 들려도 반가웠단다. "어느 날엔 의원실 밖 복도에서 여성 의원 목소리만 들려도 너무 반갑더라.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알지 못하는데도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는 얘기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사위원회 위원장을 맡던 날, 그는 "비록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놀랍고 뭉클했다. 보통 여성가족위 아니면 여성이 위원장을 맡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실제로 20대 국회 현재, 여성이 상임위 위원장을 맡은 곳은 16개 상임위 중 단 하나, 남인순 민주당 의원(서울 송파구병)이 위원장인 여성가족위 뿐이다.
"국회, 유리도 아닌 '콘크리트 천장'... 여성보좌진협회 생기면 다르지 않을까""남자들은 국회 경력이 하나도 없어도 특채도 잘되고, 인턴으로 들어와도 금세 직급만 잘 달던데 저는 몇 년씩 세전 120만 원을 받으며 야근에 총선·지선을 다 뛰어도 결국 안 됐다. 마지막에 있던 방에선 제가 국회 근무 경력이 제일 길었는데도 여전히 인턴이었다. 끝내 급은 못 달고 국회를 나왔다. 처음엔 내 학력 때문인가, 했는데 같은 대학 동기 남자애를 보니 금세 진급하더라. 남자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있다. 국정감사 땐 상임위 기관부터, 주요 부처는 남자에게 주고 막내 인턴·여성 비서들에겐 덜 중요한 곳을 준다. 남자 인턴은 옆에 앉혀놓고 질의서·보도자료 쓰는 법을 가르쳤지만 여자인 제겐 PPT·판넬 같은 걸 만들라고 시켰다. 전화 응대부터 방 청소·다과 준비까지, 잘 해도 티 안나는 일은 모두 제 몫이었다."C씨는 특히 '유리천장'을 말하며 목소리가 커졌다. 총합 약 5년을 일했지만 진급 한 번 못한 채, 인턴으로 시작해 인턴으로 끝났다. "국회는 유리도 아니고 콘크리트 천장이다. 열심히 해도 '애 낳으면 관둘 거잖아'라며 기회조차 안 줬다", "제가 다른 의원실에 낸 이력서가 200개는 넘는데 면접을 본 건 열 번도 채 안 된다"는 것. "유능한 보좌진이 돼 일을 잘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수 년간 버티던 C씨는 결국 19대 때 국회를 떠났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다. 휴가도 휴일도 없이, 매주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몇 년을 버텼다. 그래도 그게 하고 싶어서 버틴 거였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거기에 내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운이 좋아 의원을 잘 만나면 진급도 하던데 제겐 그런 운도 없었다. 세상엔 안 되는 일도 있는 거라고, 나중엔 그냥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는 사회 각계의 '미투', 성폭력 피해고발 흐름이 정치권으로 향하는 게 '당연한 순서'라고 봤다. 그렇게 해서 국회가 바뀌기를, 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성폭력 범죄는 유권자를 속이는 일이다. 피해 고발이 없다고 마치 죄 없는 사람처럼 활보하는 건, 그런 가해를 언제 저지를지 모르는 상태로 있는 걸 유권자들도 바라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C씨는 이어 예전 자신처럼 고립감을 느끼고 있을, 국회 안 여성 보좌진들에게 지지의 말도 건넸다. 그는 "안에서 너무 막막하고 답답할 거다. 그 답답함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거다. 그래서 감히 (고발에) 동참하라고도 못 하겠다"면서도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가 나쁜 거란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