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선수단 관계자에게 받은 라이터
겨레하나
선물을 받은 응원단도 답례로 뭐라도 건네고 싶어 주머니를 뒤져보게 되었다. 그때 남측 관계자(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응원단과 늘 함께 다니는 사람들)가 옆에서 손사래를 치더란다. "안 주셔도 된다"면서.
평창올림픽 현장, 북측응원단 주변에서는 늘 이렇게 '아슬아슬'한 경계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응원단을 에워싼 관계자들은 몰려들어 구경하는 시민들을 그냥 바라보다가, 누군가 말을 건네면 슬그머니 나타나 시야를 가로막았다. 이날 라이터를 선물로 받는 것까지는 지켜봤지만 답례 선물은 주지 말라고 한 것은 그 관계자의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평창올림픽에서 '평양사람'과 인사하다 벌어진 일평창올림픽에서 나는 '아는 평양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평양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북측 관계자가 응원단과 함께 평창을 찾은 것이다(내가 일하는 겨레하나는 '남북교류협력단체'로 북측 파트너 민족화해협의회와 함께 2004년부터 꾸준히 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해왔다. 2015년 12월 2일~5일 실무협의차 평양을 방문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분도 나를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놀라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만, 반가움의 대화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눈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반가워한다는 걸 확인한 게 전부였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쳤다면 "아까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다음에 한번 봐요"라고 문자라도 보내면 될 텐데, 그럴 수가 없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만나러 가기는커녕 연락할 수도 없다. '특수한' 남북관계, 분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평창올림픽 경기 중에 또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인사하기는 어려웠다. 한번은 경기 응원이 끝나고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북측 응원단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다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아는 얼굴'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마침 나를 알아본 그분도 손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찰나, 내 손에 부딪힌 건 검은 장갑의 다른 손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관계자가 자기 손을 끼워 가로막은 것이다.
응원단과 인사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이파이브를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까? 그 관계자가 그 짧은 순간 자기 손을 내밀면서까지 가로막았던 것은 어떤 경계심의 발로였을까.
"머릿속의 38선을 넘어야" 다양한 민간교류를 준비하며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란 두려움이 단번에 깨졌다. TV로 생중계된 평양의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 이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발전했다.
이제 세 번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례적인'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김연철 교수는 한겨레 칼럼 <한반도의 새로운 상상력>(2018.03.11)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8년 봄 역사의 기차가 굽이를 돈다. '시대착오'는 튕겨져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담대한 상상력이다. 머릿속의 38선을 넘을 때가 왔다."
만남이 일상이 될 때, 남북 관계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과 북의 사람들의 만남, '민간교류'를 추진한다.
겨레하나는 2015년 합의했지만 이어지지 못한 <남북 대학생 역사유적 답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우체국 노동자들은 우편 교류를, 철도노동자들은 철도를 잇는 꿈을 꾸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은 북한에도 택배 노동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해 하며, 마트노동자들은 북한 백화점 서비스 노동자들과 만나고 싶어 한다. 학생들은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야영과 캠프, 등산 동호회에서는 백두산 트레킹을 꿈꾸기도 한다.
'민간교류'는 사람들의 만남이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같은 말을 쓴다는 것 등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들은 북측 사람들을 만나 '현실'과 '경험'이 된다. 이렇게 직접 만나야만 넘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벽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