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시집 머리말은 없다다만 이렇게 한 구절이 있을 뿐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오월에 박노해”
해냄
동료들은 박노해가 누군 줄 몰라 그의 시집을 사 선물로 준다. 형 박기호는 가톨릭신학대학 학교 신문에 그의 시집 서평을 쓴다. 동생을 만났을 때 그 서평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참으로 훌륭한 서평이었다. 형은 <노동의 새벽>을 읽으면서 노동운동하는 동생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시집을 내고 그 이듬해 서노련 중앙위원이 되고 그 뒤로 7년 남짓 수배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19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주교도소에서 감옥살이를 한다. 이때 그는 우리말의 뿌리를 '직관'에 기대어 찾아간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내'이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라는 뜻이구나. 안해는 내 안에 떠 있는 밝은 해인 거야. 해는 본디 밝은 것인데 안해의 얼굴이 그늘지고 찌푸려져 있다면 그 먹구름은 무엇인가. 바로 남편 놈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세상의 남편들은 하늘이 맑고 흐림을 살피듯 늘 '안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해야 하리라. 아내 역시 자기 안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주위를 환하게 밝힐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햇덩이처럼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은 다르게> 29쪽
어문학계에서는 아내를 '안채에 있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안ㅎ'에 곳을 뜻하는 '에 또는 애'가 더해져 '안해'였다가 16세기쯤에 '아내'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이 말은 철저히 유교의 굴레 속에서 여성을 집구석에 꼼짝달싹 못하게 가둔 것에서 생겨난 말이다. 흔히 '마누라'는 낮춤말로 아는데 그렇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마누라는 '마노라'에서 왔고, 이 말은 처(妻)나 귀인(婦人)의 존칭으로 쓰였다. 15세기에는 상전이나 임금을 뜻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높은 말이 처를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아내를 안채에 가둬 놓고, 함부로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다. 사대부 집 구조는 유교의 이념에 따라 남녀를 구분하여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짓고, 여성을 배제하고 통제하고 업신여긴다. 그러면서 존칭인 마누라가 한순간에 낮춤말이 되고, 그 자리에 유교의 아우라가 덧칠된 '아내'가 들어와 버린 것이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그렇다면 박노해의 풀이는 잘못되었는가? 학자들의 주장이 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에 대한 말뿌리 연구는 아주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노해 같은 직관은 여전히 중요하다. 신영복이 '바다'와 '그림'의 뿌리를 '받아들이다'와 '그리워하다'에서 찾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박노해의 직관은 유교적 아우라 속에 있는 '안사람' '집사람' '아내'를 현대에 맞게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멋지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박노해는 '아내'의 기원뿐만 아니라 '터무니없다', '나쁜 사람', '알뜰하다'의 내력도 새롭게 풀이한다. '터무니없다'는 '터(땅)에 무늬가 없다'에서,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에서, '알뜰하다'는 '알이 들어차다'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터무니없다'와 '알뜰하다'의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쁘다'의 어원은 연구된 바 있다. '나쁘다'는 '높다'의 맞견준 말 '낮다'의 '낮'에 접미사 '브다'가 더해 생긴 말 '낫브다'에서 온 것으로 본다. 원래는 '높지 않다' 또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는데, 18세기 이후 '좋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본다면 '나쁜 사람'은 '높지 않고 낮은 사람' 또는 '부족한 사람'이다. 박노해가 '나뿐인 사람'으로 풀이한 것과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을 때는 어문학 지식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렇게 직관과 상상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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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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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아내'는 내 안에 떠 있는 밝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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