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원경희 여주시장
박정훈
"세종대왕께서 문무백관들이 훈민정음을 쓰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거예요. 왜냐면 그들은 한자를 이미 머릿속에 있고 또 그걸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세종대왕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계속 회자 되고 기록으로 남기시기 위해 6대조 할아버지에 대한 충성시를 적게 한 거죠. 그래야 대신들도 그것에 대해 반발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6대조 할아버지를 보고 충성하는 시를 적어라. 훈민정음으로 적어라. 그런 거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인 해동) 육룡이 나르샤입니다."원 시장은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의 6대조 선조들을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세종은 그렇게라도 훈민정음을 남겨서 전해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훈민정음의 첫 번째 위기와 연이어 두 번째 소멸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사실 훈민정음이 없어졌잖아요. 사라져서 일본사람들이 한일합방 시켜놓고 한글을 말살시키면서 조선의 글자를 뜻도 없는 글자고 한옥의 창문의 창살을 본떠서 만든 거다. 이응은 문고리. 우리나라사람들이 해방될 때까지 거기에 반박을 못 했어요. 왜? 글자 제작원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글자 제작원리인 훈민정음(해례본)이 왜 없어졌냐면 연산군 때 없어졌어요. 연산군 때 한글로 누군가 대자보를 여기저기 붙인 거예요. 그래서 연산군이 찾으라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연산군이 이런 괘씸한 것들이라면서 한글로 쓴 책들 다 붙태워라 한 거죠." 원 시장은 "그때 불에 타서 훈민정음이 다 없어져 버렸다. 근데 다행히 2개가 남아 있었다"라며 "누군가 책 표지를 찢어 몰래 보관을 했다. 그것이 1940년에 간송 전형필씨가(간송미술관)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거다. 집 한 채 값만 달라고 하자 '이렇게 귀중한 걸 집 한 채 값만 줄 수 없다. 10채 값을 주겠다 그러면서 산 거다"라며 그 숨겨진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그게 일제 때니까 발표를 못하지 않나. 가지고 있다가 해방이 되고 6·25나서 다른 골동품은 어쩔 수 없이 두고 그것만 들고 피난을 간 것"이라며 "6·25 끝나고 이것이 훈민정음이라고 해야 하는데 근데 표지가 없잖나. 표지가 어디 나오냐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거다. 그래서 훈민정음 표지를 복원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며 그 긴박한 순간을 이야기했다.
이어 "올해가 세종대왕 즉위 600돌 되는 해다. 제위 32년 동안 해 오신 모든 부분들이 다 백성들을 위한 것들을 해 오셨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여주시의 행정도 여주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시장으로서 해야 할 애민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주시가 기존에 보유한 세종대왕과 관련한 유·무형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방문객들이 여주에서 '세종대왕의 모든 것'을 배우고 즐기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여주시가 '세종대왕과 한글의 중심지'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한글 세계화 위해 여주시민들만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동참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