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아리랑나라 판 겉그림. '아리랑나라'는 이오덕 님이 손수 출판등록을 해 놓았던 출판사이다.
아리랑나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 아이는 오래지 않아 멧골집을 떠납니다.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홀로 건사할 수 없어서 텃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때 이오덕 어른은 이 어린 제자한테, 학생한테 어떤 말을 건네고 어떤 손길을 보냈을까요. 두 어버이 죽음을 그야말로 차분히 적바림한 아이를 지켜보아야 한 이오덕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오늘날 '제3세계 어린이 노동'을 이야기합니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도 얼마 앞서까지 '제3세계'인 줄 잊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덟아홉 살 아이들이 '담배 조리'를 한 줄 잊거나 모르기 일쑤이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어버이 곁에서 쉴 틈이 없이, 아예 놀 틈조차 없이 일손을 거들던 시골 아이들은 먼먼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돌미는 산에서 추워서 울고 있습니다. 소나무도 산에서 추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바람이 부니까 싫다고 떠드는 소리가 왕왕하고 들립니다. 돌미하고 소나무하고 친한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며 벌벌 떠는 것 같습니다 (산,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2년 김민한 1969.10.9.)
어제 점심때 새끼를 꼬고 있었다. 아버지는 짚을 많이 쥐고 하는데 보니 새끼가 아주 굵고 내가 까 논 것은 아주 가늘다. "아버지요, 왜 고키 굵기 까요?" "집 일 새낑깨 굵기 까지 웃째." "나는 가만히 앉아서 깍까?" "그래 아문따나 깔라마." 나는 짚뿍시기에 앉아 새끼 까 놓은 것을 붙들고 짚을 둘 집어 들고 양쪽에 끼어서 손으로 비비니 부시륵부시륵 한다. 그래 나는 막 빨리 깠다 (새끼 꼬기, 상주 청리 3년 깅경수 1963.11.18.)
200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일하는 어린이'가 드물다 하지만, 이 얘기도 남녘 얘기일 뿐입니다. 한겨레인 북녘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북녘 어린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만한가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로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슬기롭거나 씩씩하거나 튼튼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마을일꾼·집일꾼·나라일꾼·누리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손에 물을 안 묻히고서 시험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어떤 몫을 맡을까요?
밥을 할 줄 모르고, 옷을 기울 줄 모르며,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일을 고되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참말로 일을 고되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일을 모르기에 놀이를 모르지 싶어요. 즐거이 나누는 일하고 멀어지기에 즐거이 나누는 놀이하고도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일할 줄 모르면서 살림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고, 일하는 기쁨을 모르면서 사랑하는 기쁨을 모르는 어른이 되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