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항소심 판결문 표지2월 5일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가 선고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죄 등 항소심 판결문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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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공개는 법치주의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우리나라의 소송 숫자는 인구 대비 절대로 적지 않으며 항소율과 상고율은 심각할 정도로 높다. 판결문의 공개는 잠재 또는 현재 당사자들이 또는 그의 대리인들이 자신들의 법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높여주고 제소율, 항소율, 상고율을 낮춘다.
판결문의 공개는 경제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투자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아니라 – 시장의 특성상 고비용 투자는 더욱 높은 매출과 연계되기 때문에 – 불확실성이며 판결문의 공개는 법에 대한 더욱 시의성 있고 정확성 있는 해석을 가능케 하여 투자판단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판결문의 공개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논의가 되는 것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다. 판결문은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수많은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어도 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수집, 이용, 제3자제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2011년 7월 18일에 개정된 민사소송법 제163조의2 및 형사소송법 제59조의3이 판결문 공개를 통제하고 있으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상의 판결문 공개는 매우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판결의 0.5%도 되지 않는 국가법령정보사이트나 대법원정보사이트에 '공간'(공식적으로 공개)된 판결서들 외에 첫째, 형사는 2013년 1월 1일 이후, 민사는 2015년 1월 1일 이후에 확정된 판결서만 공개되고 있어 아직도 판결에 영향을 주는 판례들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렵다.
둘째, 미확정된 판결서는 공개대상이 아니어서 미확정된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고 셋째, 형사는 임의어 검색이 불가능하여 원하는 판결번호를 제시해야 판결문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서 판결의 공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다른 사건들을 비교하기 위한 시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넷째, 임의어 검색이 가능한 민사의 경우에도 85개의 개별 법원 별로 검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검색 결과로 제시된 판결서를 읽어보기 위해서는 판결서당 1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검색을 통한 지식습득의 자동화라는 목표가 실질적으로 사장된다고 볼 수 있다. 검색을 해본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원하는 자료 1건을 찾기 위해 해당 검색어를 포함하는 문서를 최소한 100건 정도 열람해보는 것은 상식인데, 그렇다면 판결서당 1000원이 아니라 1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모든 판결서에 등장하는 당사자들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 및 법인들이 비실명처리 되면서 판결서의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물론 법원도서관을 통해 사전에 예약을 하고 모든 판결문들을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5천만 전국민을 상대로 단 4개의 터미널이 열려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이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공개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기간, 방법 등에 있어서 매우 열악한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행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우려들이다. 특히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판결서 등에 기재된 성명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아니하도록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있어 대법원규칙은 개인정보보호법이 보호하는 가치를 염두하고 위와 같은 판결문의 공개를 제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사판결서 원스톱통합검색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로 '열람 대상 판결의 당사자를 알아낼 위험성이 통합 시스템 구축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시된다. 또 미확정판결문의 공개에 대한 반대의견에도 '개인정보,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 침해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이 등장하고, 형사사건의 임의어 검색 허용 반대의견에도 '개인정보와 사생활 및 명예를 침해 할 가능성이 커짐'이 등장한다.
물론 이외에도 '미확정판결을 공개할 경우 이것이 확정된 법리로 오인할 우려' 등의 우민주의적 발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진지한 판결문 공개반대론의 뒤에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보호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우리 법원의 구차한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