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마을 위령비하미마을 위령비에는 당시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생년이 적혀 있다. 1965~1968년생 아기들도 희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좌) 뒷면에는 비문을 덮은 연꽃 무늬 그림이 있다.(우)
이지은
둘째날은 조사팀이 마을로 찾아가 학살 현장을 살폈다. 생존자의 안내에 따라 당시 사건이 일어난 곳, 사람들의 시체가 모여 있던 곳 등을 돌아보고, 위령비에 묵념을 했다. 하미 마을의 위령비는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지원으로 건립된 것으로, 한국-베트남 간의 과거 청산을 위한 민간단체 최초 지원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족 연락반장을 맡은 OO할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생계가 겨우 안정되기 시작한 1990년부터 1999년까지 공동 제단 마련을 위한 기금 모금운동이 마을 자체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기금 마련이 잘 되지 않던 차에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나섰고, 2000년 5월 위령비가 세워졌다.
그런데 이 위령비에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이에 풀지 못한 이야기가 봉인돼 있다. 본래 위령비 뒷면에는 한국군 청룡부대 병사들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비문이 있었고, 이를 알게 된 한국대사관에서 항의를 했다. 이후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측도 비문 수정을 요구했다.
마을 주민들은 비문 수정에 반대했으나, 베트남 정부마저도 한국으로부터의 민간투자와 원조를 이유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나서게 됐다. 결국 하미마을 주민들은 비문에 손을 대는 대신 비문을 연꽃무늬로 덮어 버렸다. 연꽃무늬 그림 안에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날의 '진실'이 봉인돼 있는 셈이다.
들을 준비를 한다는 것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곧잘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비교하곤 한다. 요컨대 '우리가 떳떳하게 일본에 요구하려면 우리의 과오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야 만고(萬古)의 가치이니 더 말할 것이 있겠냐만, 이때의 '우리'라는 범주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운동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다음의 두 가지라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1991년 김학순의 최초 증언 이후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피해 사실을 숨기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있었다.
김학순의 목소리는 이를 뚫고 나온 것이기에 그만큼 힘이 있었다. 그러나 최초 증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들이 이미 그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위안부' 운동의 선구자인 여성학자 윤정옥은 돌아오지 않는 여자들을 찾아 나섰다. 윤정옥은 김학순이 나타나기 전에 <정신대 원혼의 발자취>(한겨레, 1990)를 기고하며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졌다. 이렇게 들을 준비가 돼 있었기에 김학순의 증언이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지금이야 연구가 집적되고 공문서도 다수 발견됐지만, 운동 초창기만 해도 '사실 입증'이라는 당면 과제가 있었다. 이에 '위안부'의 증언은 '증거'로써의 기능에 초점이 맞춰지고, 따라서 동원된 방식이나 위안소 생활에 집중됐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위안소에서의 생활이 단절적인 시간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생을 거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에는 말씀을 잘 하시다가도 '사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줄이시는 경우가 있다. 이 낮아지는 목소리의 의미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일 걸렸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교훈을 참조한다면, 먼저 우리는 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아직도 '우리'가 주어 자리에 놓여 있다. 이미 체화돼 있는 '우리'의 자리 바깥으로 물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준비가 먼저 돼야 하지 않을까.
둘째는 '시민평화법정'이 '법적 투쟁'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으나, 법정에서 사건화되지 않는 삶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현지조사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률팀과 연구진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함께 참여했다. 법의 힘을 간과하지 않되, 거기서 잘려나가는 삶의 이야기가 보충될 때 우리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함께 변화하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