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신분을 나타내는 우리 사회에 착한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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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감수성으로 세상의 메시지에 저항하기지난 수요일, 아내와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사람과 자연, 음식 같은 자기만의 숲을 벗 삼아 살아간다. 영화는 우리 부부가 잊고 살았던 일상과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땅의 고마움, 정직한 노동과 땀, 음식을 통한 관계,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 동식물들의 성장과 순환, 신중한 소비, 계절의 성실함, 다양한 날씨의 소중함.
이 이야기가 집이 신분을 나타내는 우리 사회에 착한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소박한 저항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자기의 숲을 딱딱한 건물로 채우라는 세상의 가르침을 거부하자. 가족, 노동, 땀, 동물, 식물, 자연, 이웃, 정직 같은 가치가 온기를 얻을 기회다.
부모님의 삶의 방식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에게 많은 혜택를 받았다. 집이 재산인 것은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명이 아닌 콘크리트를 자기의 숲으로 여기는 사회는 문제다. 한 방향으로 가는 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2위가 건물주다. 어린아이도 이 세상의 흐름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귀농을 해야 한다거나 영화 속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영화를 단조롭게 이해하는 결과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귀농 또한 다양한 삶의 방식 중에 하나로 존중받으면 족하다. 우리 사회의 진짜 염려는 귀농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숲이 없어서다. 이 세상 한복판에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의 메시지에 저항할 수 있을까? 나의 숲에 무엇을 채우며 살까? 다음에는 우리 부부의 우여곡절 일상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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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숲을 콘크리트로 채우라는 세상에 저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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