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젊은이들.플뤼므로 광장 주변에는 대학교들이 많아서 싱싱한 젊음을 느끼게 한다.
노시경
평일 낮 시간의 카페 안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지 않고, 야외 좌석에 편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이 꽤 모여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이지만 이곳 젊은이들이 말하는 프랑스어는 참으로 경쾌하게 들린다. 프랑스 내에서도 투르가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지방이라는 소문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광장 주변으로는 높은 목조건물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외길 같이 이어지고 있다. 바닥이 안개비에 젖어 운치 있는 중세의 골목길들은 중세시대 영화 촬영세트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중세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좁은 골목길 안쪽으로 다정한 연인이 함께 걸으면 참으로 어울릴만한 곳이다. 이 거리에서 중세의 정서가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광장 주변은 중세의 향기를 품고 있다.
중세시대에 이곳은 투르 상인들의 돈 거래가 이루어지던 넓은 광장이었다. 원래 투르는 루이 11세(Louis XI, 재위 1461년~1483년) 당시인 1461년부터 앙리 4세(Henri IV, 재위 1589년~1610년)에 의해 수도가 파리로 정해지기 전까지 중세 프랑스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 영향으로 인해 현재도 투르는 루아르 강변 지역을 통칭하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 지역의 고성 순례 기점이 되어있다.
루이 11세가 투르를 프랑스 수도로 정했던 당시 이 도시는 사치와 소비의 극치를 이루는 도시이기도 했다. 5백여년 전에 플뤼므로 광장은 프랑스 수도의 금융 중심이었으니, 당시 이곳은 프랑스 전체의 중심으로서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광장을 둘러싼 중세거리는 새로 복원되어 샤또 뇌프(Château neuf) 구역으로 불리고 있다. 샤또 뇌프 주변의 목재 골조 건축물들은 전쟁의 상처 이후 복원된 곳이 많지만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일부 목조 구조물들은 지금까지도 과거의 건축물 안에 당당하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