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구이 김을 마음속으로 아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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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작업에 도구까지 시원찮으니 김 한 번 굽는다는 게 보통 각오로 덤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1975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지방에서는 옛날에 새며느리를 보고 제일 먼저 김을 재우게 하여 음식솜씨를 판가름해왔는데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기름을 알맞게 골고루 바르는데 기름이 지나치게 많으면 오그라들고 모자라면 쉬 타게 된다."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는 시집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살림을 하느라 얼마나 낯설고 힘들었을까. 잘 모르고 서툴면 찬찬히 가르쳐주면 될 것을, 시험하고 판단까지 할 일인가 싶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간호사계의 '태움 문화' 속에 시어머니-며느리의 그림자가 보인다. (태움 문화는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는 방식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우는 것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간호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보편적인' 문화라고 한다.
간호사계에 '태움'이 있다면 군대에는 '갈굼'이, 일반 가정에는 '시집살이'가 있다. 이는 모두 위계질서와 역할만 중시하고 그 안의 '인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부장문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뿌연 김 연기 사이로 시집살이에 찌들어가는 새색시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구이 김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어기름 바르는 솔이 나온 지 10여 년 만에 '자동김구이' 기계가 개발되어 특허를 얻었다.
"<자동김구이>는 김의 품질에 따라 참기름 배출량과 소금 배출량을 조절해주면 김이 한 장씩 참기름 배출 롤러와 소금 배출 롤러를 통과, 적당량의 소금과 참기름이 발라지게 된다. 이렇게 참기름과 소금이 발라진 김은 다시 전열판을 통과, 타지 않고 알맞게 구워지게 된다." (<매일경제> 1982.8.13.)
'자동김구이'라 불린 김 굽는 기계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 무렵 구워 나온 조미김이 서서히 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구이김> <맛김> 등으로 불리는 가공김이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80년 6월경, 태조실업, 삼해김 등이 일본의 것을 모방,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져 선보였는데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매일경제> 1988.8.17.)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해 사용해오던 중 국내에서도 김 굽는 기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 온 반찬을 상에 올린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때인 만큼 중소기업들이 판매처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터.
업체들은 구매력 있는 고객이 많이 찾는 백화점을 공략했다. 손이 많이 가는 김을 편하게 사먹을 수 있다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조미김이 크게 환영받으면서 여러 중소업체들이 생산에 참여해 1980년대 가공김 시장규모는 해마다 40퍼센트 이상 확대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많은 중소업체들이 도산을 맞았다. 1986년 동원사업, 오뚜기식품, 동방유량이, 1987년엔 미원과 사조산업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춰놓은 중소기업을 차례차례 인수해갔다.
삼해김, 진양구이김, 유신갯마을김, 안성돌고래김 등 다양한 중소기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던 조미김 시장이 점점 대기업 쪽으로 기울더니 1987년엔 동방유량의 해표김(25.5%)과 동원양반김(17.6%)이 시장점유율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매일경제> 1987.9.12.)
이 시기 대기업들은 조미김 만이 아니라 김치, 어묵, 오징어 가공 시장에도 손을 뻗쳤다. 이 업종들은 시장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그동안 외면해온 분야였다. 그런데 아파트가 늘어나는 등 생활모습이 크게 변하면서 국내 수요와 일본 수출이 늘자 대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40여 개 구이김 생산업체들은 정부에 대기업의 신규참여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구이김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대기업은 1988년 가공김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기계로 대체된 노동, 까맣게 잊히는 건 아쉬워요즘엔 김 양식이 늘어나 김 값이 많이 저렴해졌다. 조미김을 생산하는 중소업체들도 많아졌다. 덕분에 구이 김을 예전보다 훨씬 흔하게 먹는다. 편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해졌다. 구이 김을 앞에 놓고 구태여 번거로운 노동을 떠올리는 이들은 이제 구세대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겠다.
노동이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은 반길 일이다. 기쁘게 환영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어, 마치 세상에 아예 없던 일처럼 까맣게 잊히는 것은 슬프다. 적어도 내 피와 살을 만들어 준, 자세히 보지 않아 없는 줄 알았던 누군가의 소중한 피와 땀을 나는 잊고 싶지 않다. 오늘도 나는 구이 김을 마음속으로 아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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