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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사
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책 가운데 두 가지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2007년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이고, 다른 하나는 2015년에 <신들의 마을>(녹색평론사)입니다. 두 가지 책은 일본 미나마타병을 다룹니다. 그런데 미나마타병만 다루지 않습니다.
두 가지 책은 미나마타라는 바닷마을을 먼저 다룹니다. 바다에 수은을 몰래 버린 공장 때문에 바닷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고 힘들었으며 죽어 나갔고 아이들이 아파서 몸부림치다가 죽는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아야 한 이야기를 나란히 다룹니다.
수은을 버린 공장이 아무런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팔짱을 낀 대목을 다룹니다. 미나마타 시골사람을 얕보는 도쿄 도시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고, 미나마타 시골사람하고 이웃이 되려는 작은 사람들 모습을 함께 비춥니다.
'앞으로 단 5년이나마 더 살 수 있을까 생각은 했어. 그래도 그렇지, 어째서 엄마가 안아 주지도 못하는데 넌 말도 없이 할머니가 졸고 계실 때 죽은 거니.' 아들의 넋이, 더없이 초라한 열세 살의 육체, 아직 따스할 유체로부터 빠져나가버리기 전에 도착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허리도 다리도 맥없이 힘이 빠져 풀길 위에 주저앉는다. 아아, 아름다운 하늘이네, 그녀는 생각한다. 하늘이 핑그르르 돈다. 단풍 든 옻나무 잎이 춤을 춘다. (59쪽)
"내는 암것두 몰러. 내가 미나마타병이라는 것밖에는 몰러." (81쪽)
일본 정부와 병원과 대학교와 지식인은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보기 모으기'에만 마음을 쏟았다고 합니다.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을 '저마다 살림을 지어 살아온 낱낱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았대요. '환자 1호, 환자 2호'처럼 '생체 실험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고 합니다.
<슬픈 미나마타>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새로 나온 <신들의 마을>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흐릅니다. 조용하고 정갈한 바닷마을에서 수수하게 바닷살림을 짓던 이들이 갑작스레 마주해야 했던 죽음바다란,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서 우수수 죽어 나가는 모습을 치러야 했던 죽음마을이란, 가녀린 아이들이 어버이보다 먼저 삶을 내려놓는 나날을 으레 맞닥뜨려야 했던 죽음집이란, 참말로 얼마나 힘들면서 가슴이 찢어졌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간호사들은 미나마타병 환자는 바보거나 미쳤거나 그냥 세 살짜리 아이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허구 있는 디다가, 다들 툭허믄 울어들대니 갓난애를 달래듯이 어르는 것처럼 말을 허는 거야 … 결국 어떤 검사도, 어떤 약도 도움이 되진 않았지." (101쪽)
"도쿄에 가믄 나라가 있을 줄 알었더니, 도쿄엔 나라가 읎드라구. 그것이 나라라믄 나라라는 것은 끔찍혀. 미나마타 사람들(공무원·공장 관계자)이나 '거기서 거기'드구만. 아니지, 또 쪼금 달러서 더 심허더구먼. 끔찍헌 일이지. 그냥 죽으란 소린지두 몰러. 소름 끼치는 디여. 나라라구 허는 것은. 어디루 가믄 우덜의 나라가 있는 것일까?" (138∼139쪽)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디로 가면 우리 나라가 있을까?" 하고요.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나라란, 우리 마을이란, 우리 집이란, 우리 바다란, 우리 하늘이란, 우리 삶터란, 우리 이웃이란,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한두 공장만 수은을 버렸을까요. 곳곳에서 숱한 공장이 알게 모르게 수은을 바다에도 땅에도 슬그머니 버리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숱한 공장은 꽤 오랫동안 정화시설을 제대로 안 갖추었습니다. 정화시설을 갖추었어도 공장 굴뚝에서는 언제나 매캐한 연기가 솟구칩니다. 화력발전소 곁에서 사는 이들은 다른 고장보다 훨씬 자주 크게 몸이 아픕니다.
여기에 고속도로가 있어요. 자동차에서도 늘 매연이 나와요. 자동차가 들끓는 곳에서는 하늘이 매캐해요. 자동차가 끝없이 싱싱 달리며 매연을 내뿜는 고속도로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기 일쑤예요.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수은을 몰래 잔뜩 버린 화학공장도 말썽이요, 우리를 둘러싼 온갖 위해·위험·공해 시설도 말썽이라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