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엔테 라 레이나에 있는 순례자 다리를 지나면서
차노휘
한국인 소리를 처음 만난 것은 팜플로나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 리셉션 직원은 나를 스펜서와 유리가 있는 방과 다른 곳으로 배정했다. 내가 방 번호를 찾아 나서자 유리가 뒤따라와서 그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맞았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방 2층 침대에서 홀로 짐을 풀 때 일행들과 떨어뜨린 리셉션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스펜서는 내 침대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반대편 입구에서부터 일일이 사람을 확인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일렬로 2층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그곳은 천장이 높았고 어두웠다. 스펜서는 한 시간 뒤에 점심을 같이 먹자면서 침대 번호를 확인하고 나갔다.
침대는 서양인 키에 맞춘 듯했다. 거의 옥상에 올라가듯 사다리를 타야 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예정된 거리보다 12km를 더 걸은 날이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2층을 힘들게 오르내려야 했다. 올라가면 내려올 일을 가급적 만들지 않기로 했다. 점심때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일어났을 때 아래층 침대에 한국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리셉션 직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스물일곱 살 그녀는 작년 이맘 때 즈음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잘 때부터 슬슬 아랫배가 아파오더란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귀국했다. 장염이었다. 일 년 뒤,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탔다. 피레네 산맥은 넘었기 때문에 그 다음 대도시인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한테는 팜플로나가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 첫 숙박 도시였다.
연석은 파리에서 이틀 머물렀을 때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순례자였다.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실직이라 인수인계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했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그의 얼굴 빛은 어둡고 말수도 적었지만 잔정이 많았다. 애주가였다.
나는 그보다 하루 먼저 순례길로 나섰다. 그는 26일 만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할 계획이었다. 하루에 거의 30km 이상을 걸었다. 그가 걷기 시작한 지 4일, 내가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우리는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만났다. 서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서 가능했다.
이렇게 해서 소리와 연석 그리고 스펜서와 니콜라와 푸엔테 라 레이나 알베르게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내가 요리를 했고 소리가 거들었다. 그녀와 장을 보러 갈 때 니콜라가 따라와서 음식 재료 값을 계산해주었다. 맥주까지 샀는데도 16.5유로였다. 물가가 쌌다. 음식을 먹고 나서는 연석과 스펜서가 설거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