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고 치열하게 사는 것. 느슨한 삶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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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아주 단순한 대답이 나왔다. 술을 끊고 치열하게 사는 것. 느슨한 삶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노동이었다. 돈 없고 가진 기술이 없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인 막노동을 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싶었다. 정말 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이제껏 한번도 육체적인 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지만 부딪혀보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인력시장으로 무작정 나갔다. 참을 수 없이 힘든 노동이 나를 치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력 사무소 사장이 나를 보더니
"여기 첨인교? 주민등록증 주소."첫 마디였다. 주민등록증을 주자
"무슨 기술 있는교?""특별한 기술은 없심더.""알았심더, 기다려보소."인력사무실에는 사람들이 30~4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작업복에 모자에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앉아 있으니 내 이름을 불렀다.
"윤창영씨 저 사람 따라 가이소."그래서 간 곳이 현대 모비스 장생포 물류장 수리하는 곳이었다. 비계(건축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일을 하는 곳이었는데 같이 일하러 간 사람이 나에게 할 일을 말해주었다. 파이프를 나르는 것이었다.
6M 파이프를 기술자가 작업하는 곳까지 날라다 주는 것이었는데, 하나 들어보니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두 개씩 들고 날랐다. 하나도 힘들어 쩔쩔 매며 나르고 있는데
"아저씨 그러다 언제 다 나르는교? 두 개씩 나르이소."그 말을 듣고 두 개를 어깨에 짊어지려고 해보았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교. 그래 일해 놓고 일당 받을라꼬 하는교?"언성을 높이며, 다가와서는 파이프 드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하니 요령이 생겼다. 다음으로 한 것이 발판을 옮기는 작업이었는데 파이프보다 더 무거웠다. 그것도 두 개씩 나르는 요령을 욕을 들어가면서 배웠다. 하루 일을 무사히 끝을 내자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렇게 해서 받은 일당이 9만 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10만 원을 받았지만 초보라서 9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나이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기술자들이나 일을 시키는 사장들은 막노동 하는 일꾼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일이 힘든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으나 인격적으로 모욕 받는 일은 참을 수 없었다. 어떤 현장에서 이제 2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기술자가 막말을 해대는 것을 참는데 진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나의 살을 깎는 일이라 생각을 하며 참아내었다.
비계일 뿐만 아니라 잡부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곰방이라고 벽돌과 모래를 위층으로 옮기는 일도 하였다. 힘든 일이었기에 일당도 15만 원을 주었다. 일당이 많은 일이었기에 큰 아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한 적도 있었으며, 작은 아들을 데려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놀면서 술이나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이제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사실 막노동을 하면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어떤 현장에 일을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일을 맡긴 사장을 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는 후배였다. 일이 힘든 것보다 초라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언젠가 제대로 일어선 내 모습을 보여주고 말테다'라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되었다. 비계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땅에서 한 15M 정도 높이에서 일을 하다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 하고 현기증으로 몸이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다 땅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방송에서는 이런 일을 하다 죽게 되는 사람의 뉴스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기에, 이렇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힘이 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