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마다 생긴 대로 춤을 춥니다.
김학현
그랬었군요. 그래서 이리 호들갑스럽게 흔들어댔군요.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혹은 살아가려는 안간힘으로. 그들이 이리 바람을 기회로 흔들어대므로 뿌리는 더욱 깊이 파고들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지요. 그 어느 때보다 세찬 바람이 싫기만 한 나와는 달리 식물들은 더 아름다운 삶에의 몸부림을 춤사위로 엮는 힘이 있습니다.
얼핏 부끄러움이 스칩니다. 나무들은 바람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데 나는 아직 찬바람이 호되고 무섭기만 합니다. 아마도 난 아직 멀었나 봅니다. 안면송들의 흐드러진 춤사위를 감상하며 더불어 겨울 칼바람의 삭을 줄 모르는 정열과 조우하며 한발 한발 언덕을 넘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단박에 넘을 수 있는 언덕입니다. 안면도의 해변과 해변을 이어주는 길은 대부분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을 잇는 길처럼 이렇게 언덕이 있답니다. 그 언덕이 좀 낮은 곳도 있고 좀 높은 곳도 있지만 모두가 그리 헐레벌떡 숨차게 올라야 하는 높은 산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을 넘는 안면송 가득한 이 길은 오래 걸립니다. 타박타박 앞만 보고 걸을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글로도 이전 글인
'찍으면 그림이 되고 멈추면 추억이 되는 곳'에 이어 두 번이나 쓰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이번에는 칼바람이 뺨을 때리니 더욱 앞으로 나가기가 버거운 날카로운 발걸음입니다. 무심히 앞으로 가자니 바람이 뒤로 밀고, 발걸음을 또박또박 떼자니 안면송의 춤사위가 너무 아름다워 정신을 홀립니다.
아! 이러다가 여기서 머물고 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러면 어떻습니까. 굳이 앞으로 가는 것만이 인생길이겠습니까. 가다가 힘들면 주저앉았다 가고, 지나는 이들의 시름 어린 소리에 귀도 기울이고, 울부짖는 이웃의 울음도 함께 토닥이고... 그런 게 인생길이지 않습니까.
언덕을 넘는 길이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발걸음이지만, 교훈 하나만큼은 듬쑥하잖습니까. 내 여물지 못한 발걸음이, 아니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자연의 속살거림이,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네 인생을 질타하는 듯합니다.
쉬어 가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은 가게 될 테니 주눅 들지 말고 굳세게 가라고. 속도보다는 삶의 질을 택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