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거, A가 X에게 중
황은주
3. "우리 함께 과거를 만들어봐요."_존 버거, <A가 X에게>, 열화당, 2009.<A가 X에게>는 독방에 갇힌 사비에르와 그의 연인 아이다가 주고받은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사비에르는 이중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감옥에 감금돼야 하는 혹독한 형벌이다. 결혼한 사이가 아니면 면회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그들은 더이상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함께했던 과거가 있다.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그들에게 익숙한 과거를 다시 상상해보기 시작한다. 처음 만난 날, 서로의 가족, 살았던 집… 천 갈래 만 갈래의 상상으로 그들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그리고 천 번을 다시 만난다. 그렇게 단단히 사랑을 붙들어맨다.
우리는 자주 미래를 약속한다. 내년에도, 그 다음해도 이렇게 같이 있자고. 그러나 정말 어려운 건 쉽게 건네는 한마디 말이 아니라 '지금 그 순간' 함께 있는 거다. 모든 현재가 미래의 과거이듯, 모든 과거는 현재를 보내야만 만들어진다. 종종 그걸 잊고 산다. 그래서 미래만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달 뒤에 만나자는 약속보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그 순간이 필요한 때가. 이제는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 함께 과거를 만들어봐요."과거를 만들자는 말은 현재를 함께하자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