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리 인생학교에서는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
꿈틀리 인생학교
수업은 크게 3가지로 진행됐다. 모든 학생이 다 함께 참여하는 수업, 몇몇 학생이 모둠을 이뤄서 하는 수업, 그리고 각자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수업. 이렇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됐다.
'모두 다 함께 수업' 중 기억에 남는 건, 민주시민 교육이다. 선생님의 입에서 "페미니즘"이란 소리가 나왔다. 내가 얼핏 알기론 '여성주의'를 뜻하는 말이었다. 속뜻이 '성 평등'에 있고 나아가서는 '보편적 인권'을 가리킨다는 걸, 이때 알았다.
"우리나라가 성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볼까요."
선생님의 질문에 몇 명의 친구들이 손을 올렸다. "여성상위 시대"라고 손을 든 친구들도 있었다.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잘 모르겠다"에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페미니즘은 남녀 한쪽의 지위를 높이는 게 아니라 '남자라면', '여자답게'란 말로 성별을 규정하지 않고 성 평등을 추구하는 말이다. 나아가서는 보편적인 인권을 뜻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난 놀랐다.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이 생겼다. '페미니즘'이란 개념을 더 알고 싶어졌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찾아 읽었다. 공부는 받아쓰는 게 아니라, 두 발로 찾아 쓰는 거였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전쟁용 무기로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국민들은 자체적으로 치안과 질서를 유지했다. 진실이 이런데도 당시 왜곡 보도로 지금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역사·시사' 모둠에서 내가 발표한 내용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을 친구들 앞에서 설명했다.
나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일어난 구체적 일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띄엄띄엄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빈 공간을 스스로 공부하고, 자료를 찾으며, 채울 수 있었다.
과거 학교는 달랐다. 긴 역사를 짧은 시간에 배웠다. 시험성적을 위해 배우고 외워야 했다. 총칼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도 딱 거기까지 가르쳤다. 여기선, 아니었다. 시험이 없으니 성적 고민도 하지 않았다. 관심이 있는 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궁금해 '소설'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정독'을 개인 프로젝트 주제로 삼았다. 8~9개월간 책을 읽고 등장인물과 역사 흐름을 정리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자료를 찾고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대하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줄거리를 이해하고자 중간에 다시 한번 읽기도 했다.
누구나 스스로 학습이 중요하다고 한다. 과거 학교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말이 쉽지 행동하긴 힘들다. 이런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고 입으로 "빨리빨리"만 외쳤다. 여긴 달랐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날 기다려줬다. 이런 과정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대답을 찾아야 했다. 막막했으나 값진 경험이었다. 나 자신과의 약속, 친구들과의 약속, 꿈틀리 인생학교 모두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개인 프로젝트로 3개월간 '설탕'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설탕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설탕 끊기'에 도전했다. 학교가 작으니 소문이 빨랐다. 설탕 끊기를 한다니 옆 친구가 꿀을 선물해주고, 또래 친구가 설탕 없는 볶음밥을 만들어줬다. "식당 엄마"는 설탕이 안 들어간 김치를 따로 만들어 주고 대체할 반찬도 해줬다. 사람들의 격려와 배려로 그렇게 무사히 프로젝트를 끝냈다.
친구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1학기엔 목공부 그룹 '피노키오'에서 활동하며, 공동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받침대와 노트북 보관대를 만들었다. 태어나 처음 톱질을 하고 전동 드릴로 나사를 조여 만든 '작품(?)이었다. 내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2학기엔 사진부 '시나브로'에서 서툰 솜씨로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담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일상과 세상을 담았다. 이렇게 차곡차곡 카메라로 담아낸 사진을 모아 작은 사진첩을 냈다. 직접 지은 시를 서너 장의 사진 밑에 적었다.
놀기도 열심히 했다. 미술 동아리 '반카소'와 야구동아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았다. 풍물 동아리 '얼씨구 사신성'을 만들어 친구들을 모으고, 선생님에게 가락을 배우기도 했다. 가장 즐거운 건, 북 치고 장구 치는 거였다. 난 장구 치는 선생님이 멋있어 보여 장구재비가 됐다. 처음엔 악기가 달랑 2개여서 애를 먹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나중엔 추수 감사 운동회, 저녁모임에서 공연할 정도로 악기도 실력도 늘었다. 연습을 놀이 삼아, 노는 걸 연습 삼아 한 덕분(?)이었다.
좋은 추억이 있으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도 있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맞춰야 했고,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다. 기숙사 생활원칙처럼 전체가 논의할 사항은 학생자치회의 '다 모임'을 통해 결정했다. 친구 사이 갈등은 당사자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해결이 안 되면, 주변 친구가 돕거나 선생님이 상담을 해줬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난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인생학교서 1년...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행복"
▲꿈틀리 인생학교 1기 학생들
꿈틀리 인생학교
끝으로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1년간 옆을 볼 자유를 얻었는데, 무엇을 배우고 왔나요?"
하나,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둘,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공부를 했다.
셋, 꿈틀리 식구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넷,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다섯, 마음껏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진심으로 괴롭고 즐거웠다.
이렇게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행복한 열여덟 살의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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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가 국가별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제도에 있습니다. 한국형 에프터스콜레 꿈틀리 인생학교는 청소년들이 '옆을 볼 자유'를 실컷 누리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꿈틀리인생학교를 참고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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